손진석 경제부 기자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올여름 펴낸 '경제철학의 전환'이라는 책에서 공공임대주택을 늘리자고 제안했다. 내년부터 5년간 286만호를 공급하면 전체 주택 중 5.8%에 그치는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20%가 된다고 했다. 주거비를 절감하자는 주장인데, 뒤집어보면 우리 경제의 고질병인 가계 부채의 근본 원인을 짚어볼 수 있다.

가계 빚의 3분의 2는 집 때문에 생기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 쌓인 1388조원의 가계 부채 중 주택담보대출만 744조원이다. 별도로 전세자금대출이 100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또 정확한 파악은 어렵지만 신용대출을 받아 주택 구입비나 전세금을 마련하는 데 보탠 액수도 수십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선진국들은 사정이 다르다. 정부가 내놓는 임대주택이 많아서 개인이 집 사느라 생기는 가계 빚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전체 주택 중 공공임대용 비율이 영국 18%, 오스트리아 23%, 네덜란드 32%로 우리나라(5.8%)보다 훨씬 높다. 재정으로 거주 공간을 공급하는 데 우리 정부가 유독 인색하다는 뜻이다. 정부는 빚을 덜 내고, 그만큼 가정이 빚을 더 짊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뿐 아니다. 대부분 국가에서 대중화된 주택 임대업체가 우리나라에선 전혀 활성화되지 않았다. 외국에선 이런 업체들이 빚을 내 임대용 집을 사들이면 기업 부채로 분류하지만,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가계 부채를 줄일 방법이 없다.

[공공임대주택, 가계 빚 줄이는 근본 처방]

그렇다 보니 임대용 주택 중 정부와 기업이 제공하는 비율이 우리나라는 21%에 그친다. 미국(44%), 영국(47%), 일본(33%)보다 현저히 낮다. 선진국에선 집을 살 때 빚 부담을 정부·기업이 나눠 가지는 반면 우리는 지나치게 개인에 지우고 있다는 의미다. 집값 상승기에 가계 부채 쌓이는 속도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을 개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할 수밖에 없다. 유독 부동산 투자에 열 올리는 나라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부는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무작정 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계 부채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가 부진할 때 빚 내라는 부양책을 썼다가 이제는 숨통을 조이겠다며 큰소리친다. 마치 국민의 탐욕을 정부가 제압하겠다는 듯이 행세한다. 워낙 가계 부채 총량이 많으니 적절한 대출 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대출 한도를 조이기만 하는 건 임시 처방에 불과하다. 생계형 자금을 융통해 살아가는 서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가계 빚을 줄이는 근본 처방은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고 기업형 임대업체도 활성화해서 정부와 기업으로 빚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집주인'이 정부·기업인 비중이 미국·영국처럼 40%대로 높아진다면 자연스레 가계 부채 총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정부·기업·가계 사이에 빚의 균형이 잡히게 된다. 경제 위기를 맞아 집값이 심하게 출렁이는 상황이 와도 국가 차원에서 대응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