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복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통상연구실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미국의 무역 적자를 심화시키고 일자리를 빼앗는 '끔찍한 협정(horrible deal)'이라고 비난하며, 이를 개정하거나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과연 한·미 FTA는 미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협정일까?

2012년 한·미 FTA 발효를 기점으로 미국의 대(對)한국 상품 적자가 확대된 것은 사실이다. 2011년 123억7000만달러에서 지난해 276억9000만달러로 늘었다. 그러나 상품 외에 서비스·투자 등 종합적 측면에서 지난 5년간 양국의 교역을 살펴보면 한·미 FTA는 호혜적인 협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FTA 발효 이후 양국 간 교역이 크게 확대됐다. 지난 5년간 상품 교역 규모는 연평균 1.9% 증가해 지난해에는 1131억달러에 달했다. 같은 기간 세계 교역이 연평균 2.8% 감소한 가운데 달성한 성과다. 교역 증가에 힘입어 양국은 서로의 수입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해왔다. 한국의 미국 수입 시장 점유율은 2011년 2.6%에서 지난해 3.2%로 상승했고, 같은 기간 미국의 한국 수입 시장 점유율은 8.5%에서 10.6%로 최근 10년 내 최대 수준으로 높아졌다.

미국이 상품 무역에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적자 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상반기까지 감소세가 이어져 무역 불균형이 점차 해소되고 있다. 반면 서비스 부문은 미국이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흑자 규모는 2011년 69억3000만달러에서 지난해 100억8000만달러로 증가했다. 특히 지식재산권 사용료에서 미국의 흑자가 2011년 44억달러에서 지난해 55억5000만달러로 증가했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상품에서, 미국은 서비스 부문에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트럼프가 '끔찍하다'고 비난한 한·미 FTA]

한·미 FTA는 상품과 서비스의 교역 확대뿐만 아니라 상호 투자 확대를 통한 양국의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2011년 198억6000만달러였던 한국의 대미 투자는 FTA 발효 이후 꾸준히 확대돼 2014년에는 미국의 대한국 투자를 추월했으며 지난해에는 409억4000만달러로 2011년 대비 배 이상 규모가 증가했다.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확대는 미국 내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고용에 기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캘리포니아 풀러턴에 CJ가 세운 첨단 시설 만두 공장이다. FTA 발효 직후 미국 현지에 제조 시설을 세운 CJ는 작년 기준 미국 만두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진출 직후부터 미국 전역에서 원재료를 조달하고 현지 고용을 확대해 지역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는 미국에서 만든 만두를 전 세계에 수출하는 등 성공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

한·미 FTA의 가시적 성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철강·IT 제품 등을 무역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며 개정을 강하게 요구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정 폐기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한·미 동맹의 균열을 우려하는 백악관 참모진의 만류와 한·미 FTA를 옹호하는 미 업계·의회의 반대 여론으로 폐기 논란은 일단락됐다. 특히 한·미 FTA 폐기로 미국 업계가 입을 피해를 우려한 타미 오버비 미국상공회의소 수석부회장과 전미제조업협회의 반대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의를 불문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폐기를 언급할 정도로 한·미 FTA 종료가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한·미 FTA 종료가 현실화될 경우 그동안 누려왔던 관세 특혜가 사라져 양국의 수출이 모두 감소할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미국의 손실이 더 클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산업연구원, 농촌경제연구원의 최근 공동 연구에 따르면 한·미 FTA 종료 시 우리나라 공산품의 대미 수출은 13억2000만달러, 대미 수입은 15억8000만달러가 감소한다. 한국의 FTA 발효 이전 관세율(4.0%)이 미국(2.3%)보다 높아 대미 무역 흑자가 오히려 2억6000만달러 증가한다. 한국 농산물이 2000만달러 관세 절감 혜택을 잃는 반면 미국 농산물은 7억7000만달러 관세 절감 혜택을 상실해 농산물 분야에서도 미국 측 손실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는 자동차·철강·IT 제품은 한·미 FTA와는 직접적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율 2.5%는 지난해에 들어서야 철폐됐고 철강과 IT 제품은 한·미 FTA 발효 이전 이미 무관세 품목이었기 때문에 FTA로 미국의 무역 적자가 확대됐다고 볼 수 없다.

한·미 FTA는 양국 간 굳건한 경제 협력의 상징이며 지난 5년간 호혜적인 성과를 이루어낸 모범적인 무역협정이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좁은 시야에 갇혀 한·미 FTA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를 더욱 개선시키고 발전시켜 양국의 교역과 투자를 확대·심화하는 것이다. 그 연장 선상에서 미국이 제기하는 무역 불균형 이슈도 적극 검토해 양국이 더 균형 잡힌 무역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한·미 FTA 5년의 손익계산서는 한국과 미국 모두 플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