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우물 출토 토기류, 높이 18.4㎝(앞줄 중간), 한신대학교박물관.

2008년 6월,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 현장을 지휘하던 한신대학교 권오영 교수의 머릿속엔 무거운 짐 하나가 남아 있었다. 206호라 이름 붙인 네모난 구덩이 때문이었다. 한 변 길이가 11m, 깊이가 3m나 되는 이 구덩이를 8년 전에는 연못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재발굴 시 구덩이 표면 한가운데서 둥근 돌무지가 드러나 목탑 터일 가능성을 고려하게 되었고, 다시 돌무지 하부에서 우물처럼 생긴 정연한 석축 시설이 드러난 것이다.

석축 너비가 120㎝밖에 되지 않았기에 한신대학교박물관 한지선 연구원이 혼자 들어가 조사를 맡았다. 6월 13일 정오 무렵 한 연구원은 돌로 쌓은 벽석 아래에서 나무로 만든 구조물과 함께 그 안에 가득 채워진 펄을 발견했다. 이 구덩이는 마침내 우물로 확정됐다. 한 연구원은 펄을 조심스레 걷어내기 시작했다. 그때 꽃삽 끝에 무언가 단단한 것이 걸렸다. 조심스레 드러내니 완전한 형태에 가까운 토기가 층층이 깔려 있었다. 완형만 헤아려도 215점. 그간 여러 유적에서 우물이 숱하게 발굴됐지만 이처럼 토기가 많이 묻힌 사례는 없었다.

발굴 책임을 진 권 교수는 우물의 구조와 주변 시설물을 토대로 어정(御井·왕의 우물)으로 추정했다. 더불어 토기 215점 가운데 충청과 전라 지역에서 제작한 것이 여러 점 포함돼 있고 그중 대부분에 제사 토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손 흔적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는 "5세기 초 백제 어정에서 지배층의 결속을 다지는 성스러운 물의 제사가 거행된 것은 아닐까?" 추정했다.

고대인들은 우물을 신성시했다. 우물은 사람이 '탄생'시켰지만 그 속에 용왕이 산다고 생각해 우물을 폐기할 때 정중한 제사를 지내곤 했다. 바로 풍납토성 우물 속 토기도 폐기 제사에 사용한 일종의 제물이었던 것이다. 다만, 평소 잘 관리했을 이 어정이 왜 그 시점에 이르러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