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조순형 전 국회의원)가 지난 11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토론했다. 조 위원장을 비롯해 김경범(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김태수(변호사), 방희선(변호사), 유미화(중경고 교사), 이덕환(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선희(가수), 이재진(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이정희(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여울(문학평론가 겸 작가) 위원이 참석했다.

왼쪽부터 김태수·이덕환·김경범·이선희·유미화 위원, 조순형 위원장, 방희선·정여울·이재진·이정희 위원, 정권현 편집국 부국장.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는 조선일보가 보수 정론지로서 위상을 보여줄 좋은 기회이자 의무였다. 그러나 사실 보도에 급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정은이 어떻게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가를 짚는 동시에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의 문제점, 그럴 수밖에 없는 구도, 국력의 한계, 이런 것을 분석해야 했다. 그래야 독자들도 상황 전개에 따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치밀한 기사는 보이지 않고, 그냥 "백악관에서 뭐라고 했다, 전화가 오갔다" 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 같아 아쉽다. 다른 신문과 차별화할 좋은 기회였는데 부족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후 이념·연령 관계없이 대북 강경론이 확산되고 있다. 전술핵 재배치나 핵무장에도 60~70%가 찬성이다. 핵·미사일 개발이 완성 단계에 가면 대한민국은 국가적 대사를 결정해야 한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전술핵 등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돕기 위한 심층기사가 필요하다. 그런데 언론도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국회의원들도 전술핵이 뭐냐"는 물음에 대답을 못한다고 한다. 전술핵과 전략핵은 뭐가 다른지, 도입하면 각각 뭐가 문제인지 등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핵무장 결심을 하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탈퇴 조항이 있는데 어떤 경우에 적용되는지, 1991년의 전술핵 철수와 남북한 비핵화 선언이 이뤄졌는데 그 경위와 배경도 알려주면 좋겠다.

―이번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확인된 놀라운 일 중 하나가 "우리가 침범당하는 게 레드라인이 아니라 미국까지 가는 게 레드라인"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이다. 국가 보위라는 헌법적 요구와 동떨어진 이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 그리고 기자들도 치열하게 질문했는지 지적해야 했다. 15가지 질문을 건드리니 대통령이 브리핑만 잠깐씩 하고 끝나버렸다. 정작 국민이 알아야 할 사안과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한 답은 없었다.

―〈인터넷 들썩인 회장님 손자 학폭 의혹, 사실 아니었다〉(9월 2일 사회면)는 많이 아쉬웠다. "서울시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학폭지역위)가 숭의초 사태를 재심(8월 24일)해 '대기업 회장 손자는 가담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는 기사이다. 이에 앞서 7월 12일 시교육청은 숭의초가 규정에 맞지 않게 부적절하게 처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니 시교육청은 학폭지역위의 재심에 어떤 입장인지 등에 대한 내용도 기사에 있어야 했다. 적잖은 사람이 학폭지역위의 재심 결과가 타당한지 확신하기 어렵고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도 잘 믿지 않는다. 이 기사 하루 전인 9월 1일 숭의초가 회장 손자의 학폭은 사실이 아니라는 보도 자료를 내자 학폭지역위가 그날 저녁 입장을 냈는데 핵심은 '손자의 학폭은 사실이 아니다'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증빙할 자료가 없어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시교육청이 9월 5일 설명 자료를 냈다. 손자가 가담했는지 판단 불가능하다는 학폭지역위의 재심 결과를 숭의초가 '손자는 가해자가 아니다'고 왜곡 발표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손자가 가담하지 않았다는 2일 보도는 이른 단정 아닌가. 이 사건은 뭐가 정확한 사실인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니 명확한 후속 기사가 필요하다.

―9월 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에서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2차 주민토론회'가 열렸을 때 주민들이 완강하게 반발하니까 장애인 부모들이 무릎을 꿇었다. 이 사진이 SNS를 통해 퍼져 충격을 주었다. 삽시간에 8만명이 지지 성명을 벌이며 확산됐다. 주민들이 특수학교 신설을 반대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서울의 경우, 15년 동안 국립 특수학교를 주민 반발 때문에 한 곳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장애 학생이 8만9000명쯤 되는데 특수학교는 173곳, 2만5800명만 재학하고 있다. 대부분 부모가 1~3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를 데리고 다닌다. 이에 관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큰 기사와 사설 등으로 다뤘다. 조선일보는 기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9월 11일 만물상에서 〈무릎 꿇은 장애 학생 모〉란 제목으로 다뤘다. 만물상은 보도가 아니라 평론이나 수필 성격이다. 특수학교 기사를 왜 다루지 않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살충제 계란 보도에서 아쉬운 게 있다. 식약처가 너무 엉망이어서 관심이 쏠려 그렇지 진짜 범인은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인데 별로 비판하지 않았다. 농약도, 양계장 관리도 농림부가 한다. 농약과 살충제를 관리하지 못한 농림부 잘못인 것이다. 농림부는 아마 축제를 했을 것이다. 이를 어느 언론도 터치하지 못했다.

―〈'農피아(농업 관료+마피아)' 출신들이 친환경 인증 민간기관 장악〉(8월 19일 A2면)에서 사용한 '농피아'란 용어에 거부감이 든다. 관피아·군피아 등에 이어 농피아라는 말을 조어했다. 누가 잘못했는지 하나하나 따져야지 '농피아'라고 뭉뚱그리면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도 방해된다. 정확하지도, 올바르지도 않은 조어이다.

―〈MBC 사장에 체포영장〉(9월 2일 A1면)을 보니 정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 답답하다. 그런데 MBC 사장을 체포할 핵심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밝혀진 게 없다. 단지 '적폐 청산'이란 말로 합리화하려는 측면이 강해 보인다. 해임이나 체포할 만한 실제 근거가 있는지를 언론이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체포영장 발부는 형사소송법 위반이다. 조사에 불응하니 구인영장이라면 몰라도 중대 범죄도 아닌데 체포영장은 아니다. 법이 정치에 매몰돼 뒤범벅되고 있다. 사법부가 안타깝다. 날카로운 지적이 필요하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 실형을 선고받은 것과 관련해 8월 26일과 28일 분석 기사를 실었다. 사설도 그렇고 대체로 못마땅하다는 입장이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부각시키는 방법에 지나친 감이 있다. 재판부 결정과 법조계 의견을 대비했는데 법조계가 전체적으로 못마땅하게 판단하는 것으로 돼 있다. 독자 중에는 끄덕이는 사람도 많겠지만 재판부에 대한 지나친 비판으로 비치기도 한다.

―9월 11일 '프리미엄 비즈' '메디컬 리포트' '2017 프랜차이즈' 등 광고성 섹션이 많았다. 신문이 독자 권익을 대변한다기보다 기업 이익을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기업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것도 어려워지지 않겠나 우려된다.


[위원들의 기사 제안]

―8월 24일 A1면에 민방공 훈련이 실시되자 시민들이 지하도로 내려가 대피한 모습과 훈련에 참여하지 않고 거리를 걷는 모습을 대비한 사진을 실었는데 좋은 비교였다. 어떻게 해야 훈련을 강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사도 필요하다. 긴장감을 너무 고조시킨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국민 안전 차원에서 대피 훈련은 강제할 필요도 있다.

―〈딱 하루 운영한 10억짜리 '워터슬라이드 이벤트'〉(8월 21일 사회면)를 보니 세금이 여전히 줄줄 샌다는 생각이 든다. 교통 통제 홍보비에만 2억5000만원을 들였다니 어이가 없다. 이런 것을 포함해 서울시 예산이 제대로 수립되고 집행되는지 철저하게 감시해달라.

―8월 24일 A2면에 실린 두 기사 〈새댁도 맞벌이도 "월 10만원(아동수당) 준다고 애 낳겠습니까"〉와 〈10년간 100조원 쏟아부었는데… 출산율은 계속 뒷걸음〉을 보면 과연 돈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금전 지원도 중요하지만 경직된 가족제도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혼술·혼밥 등 혼자 사는 트렌드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렇다면 혼자 애를 키우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인프라가 너무 없다. 국가 입양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프랑스는 1990년대 말 동거를 통해 출생한 아이 등도 똑같은 사회적 케어를 받도록 법을 바꿨다. 이게 지금 인구 문제 해결에 중요 역할을 한다. 이런 부분도 연구해보자.

―정부가 8·2 부동산 대책 이후 서울의 LTV(대출 한도)를 40%로 제한한 것과 관련해 〈기자의 視角 : 네덜란드 LTV는 101%〉(8월 17일)에서 네덜란드 예를 들었다. 3년간 매년 1%포인트씩 내려 2018년 100%로 맞춘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아침에 70%에서 40%로 깎아버렸다. 이렇게 정책 대부분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식이고, 냉·온탕을 오가니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 전문가들도 집값이 올라가니 내려가니 이런 얘기만 한다. 정책 수립과 운용은 장기적으로 봐야 함을 언론이 강조해 깨닫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