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석 경제부 기자

"제가 20년 동안 시민단체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언론 접하는 것은 매우 친숙해져 있습니다. 말이 굉장히 많습니다. 오늘부터는 최대한 말을 줄이려고 합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5월 17일 위원장 내정 직후 청와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누가 묻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말수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뒷감당 걱정 없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교수의 특권을 내려놓고 공직자에 걸맞게 언행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로부터 100여일이 지난 지금 김 위원장은 언제 그런 다짐을 했나 싶다. 김 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에 대해 "미국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처럼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가다간 수많은 민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는 "맨몸으로 최고의 인터넷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를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반발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정치가 기업과 기업가를 머슴으로 보는 오만함과 민 낯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커지자 김 위원장은 지난 11일 "저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많은 분이 질책의 말씀을 주셨다. 앞으로 공직자로서 더욱 자중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제민주화 관련 단체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어떤 인물?]

김 위원장이 말실수를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7월 공정위의 내부 혁신 계획을 발표하면서 뜬금없이 "나쁜 짓은 금융위원회가 더 많이 하는데 욕은 공정위가 더 먹는다"고 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고 "변명의 여지 없는 명백한 실언"이라고 사과했다. 당시 관가에서는 "재벌·금융 개혁을 위해 공정위와 금융위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김 위원장이 쓸데없는 말로 갈등만 키웠다"는 비판이 나왔다.

공정위 안팎에선 김 위원장의 '넓은 오지랖'을 설화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한다. 시민단체 활동하던 때의 습관을 벗지 못해 공정위 소관이 아닌 일에도 자꾸 개입하려 든다는 것이다. 비판 못지않게 아부 또한 거침없이 한다는 지적도 듣는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일 한 강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 문재인 대통령은 잡스가 이뤄낸 혁신을 현실로 안정화해가는 팀 쿡(잡스의 후계자)"이라고 했던 과거 발언을 정정해 "지금 대통령은 제2의 스티브 잡스로 진화 중"이라고 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각종 설화에 대한 김 위원장의 자체 진단이다. 김 위원장은 이해진 논란에 대해 "아직 공직에 적응하지 못했잖아요"라고 했다. 과거 금융위에 사과할 때도 "공직자의 자세를 다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말실수를 했다"고 변명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은 공직의 무게감을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가. 구화지문(口禍之門·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라고 했다. 말 한마디로 기업을 벌벌 떨게 할 수 있는 경제 검찰의 수장직을 수행하기엔 김 위원장 입이 너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