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한 이상호 작곡가.

작곡가 이상호씨는 ‘메가 히트곡’ 제조기로 알려져 있다. 이승기의 ‘결혼해줄래’, 씨엔블루의 ‘외톨이야’, 씨야의 ‘사랑의 인사’, 휘성의 ‘가슴시린 이야기’ 등 노래방 애창곡만 헤아려도 열손가락을 금세 넘어선다. 최근에는 가면라이더라는 작곡팀의 일원이라는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라붐의 ‘휘휘’와 크로스진의 ‘블랙앤화이트’라는 노래를 만든 익명의 작곡팀 가면라이더가 이씨를 비롯, 서용배 작곡가, 박우상 작곡가 등 3명으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최근 남자 아이돌 곡을 많이 쓰고 있다는 이씨를 만나봤다. 그는 대세인 워너원과 방탄소년단을 함께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로 꼽기도 했다. 이하는 일문일답.

- 스타 작곡가로서 '딥(deep)'하게 파고드는 장르가 있나.
"예전엔 트랜스, 록을 좋아했다. 하지만 대중음악 작곡가를 하려고 보니 많은 장르를 섭렵해야 하더라. 해야되는 장르가 너무 많아지다 보니 좋아하는 장르와의 경계가 무너졌다. 그때부터 내 색깔이 희석된 것 같다."

- 대중음악 작곡가로서 색채가 진하지 않은 건 오히려 장점 아닌가.
"그렇다. 색이 너무 짙은 작곡가의 곡은 어떤 가수가 불러도 다 같은 색이 된다. 하지만 작곡가의 색이 진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 가수만의 색채를 살려낼 수 있다. 주변에서는 내 곡을 들으면 나만의 시그니처가 느껴진다고 한다. 나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색이 있다고 하니 다행이긴 한데 내가 생각했을 때는 색이 없는 것 같다."

- 평소에는 어떤 음악을 듣는가.
"빌보드 차트와 국내 음원 사이트 실시간 차트 음악을 대부분 듣는다. 트렌드 모니터링용이다. 즐기면서 듣기보다는 음악적인 소스와 멜로디의 리듬 같은 걸 분석적으로 듣는다. 일종의 직업병이다.(웃음) 한 명의 아티스트를 정해서 듣기 보단 현재 대세이거나 대세가 될 것 같은 장르의 음악을 많이 듣는다. 뭄바톤(레게톤의 일렉트로닉 하우스), 트로피칼 하우스(재즈톤의 열대 악기가 사용되는 하우스)와 칠 하우스(차분하고 몽롱한 느낌의 하우스), 글리치(노이즈를 기반으로 한 음악) 같은 짙은 장르의 곡을 많이 듣는다."

- 들으면서 귀에 들어오는 작곡ㆍ작사가 또는 가수가 있다면.
"아이유가 있다. 작곡ㆍ작사는 물론이고 노래를 너무 잘한다. 요즘은 싱어송라이터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블락비 지코의 신보 수록곡 '천재' '안티'를 들으면서는 '저런 친구가 진짜 천재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힙합은 스웩과 허세가 있지 않나. 모든 래퍼들이 자기가 잘났다고 하고 있을 때 지코는 '네가 무슨 천재야. 천재인 척 하고 있지'라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그게 천재같다. '이 친구는 오래 가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후배 작곡가지만) 우러러 보게 된다. 팬시 차일드(지코ㆍ딘ㆍ크러쉬 등)도 트랙이 신선해서 좋다."

- 작곡가로서 '아픈 손가락'이 있다면.
"씨엔블루의 외톨이야. 사실 외톨이야는 대한민국 역사상 표절 소송에서 피고가 승소한 첫 판례다. 논란 때문에 너무 힘들었고 억울함에 울기도 했다. 표절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1년간 곡을 만들어야 할 시간에 증거자료를 만들었다. 명예를 줬지만 씻을 수 없는 상처도 준 애증의 곡이다. 나는 괜찮지만 내 아이들이 걱정됐다. 인터넷엔 아직도 표절 관련 기사가 남아있다. 아이들이 커서 아빠가 작곡가라고 말했을 때 혹시 놀림 당하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이 컸다. 하지만 되려 당당하게 '우리 아빠는 외톨이야 작곡가다'라고 말하라고 교육시키고 있다.(웃음)"

- 표절 문제에 대해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표절에 대한 얘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작곡가에게는 평생 멍으로 가득 찬 곡으로 남을 것이다. 표절에 대한 의견을 제기하는 건 괜찮은데 그 판단 기준을 대중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표절 논란이 일어났을 때는 다들 앞장서서 욕하다가 법원에서 표절이 아니라고 판결을 했더니 아무도 관심이 없더라. 대중들이 이 사건의 본질에 대해 논한 것이 아니라 단지 가십거리로만 소비한 것이 아쉬웠다."

- 요즘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는?
"요즘 남자 아이돌 곡을 많이 쓰고 있다. 워너원에게 곡을 한 번 주고 싶다. 함께 프로듀싱 작업을 하고 싶은 팀은 방탄소년단이다. 노래도 잘하고 멤버들이 곡 작업 참여도가 높은 걸로 알고 있다. 음악 성향도 나랑 잘 맞다. (방)시혁이 형 얘기 들어보면 트랙도 잘 짜고 멤버들이 다 실력 있더라. 내가 트랙을 주면 멤버들이 탑 라인과 랩을 쓰는 식으로 작업해보고 싶다. 화제성이나 파급력 때문에 작업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의 창의력과 에너지를 받고 싶다.

- 작곡가로서의 목표가 있나
"빅뱅, 엑소, 방탄소년단과 같이 '인생팀'이 될 만한 남자 아이돌 제작해보고 싶다. 남자 아이돌 그룹은 세계관이 필수지 않나. 엑소의 '엑소 플래닛', 방탄소년단의 '청춘' 같은 세계관을 구축해서 제대로 만들고 싶다."

- 많은 곡을 히트시킨 작곡가로서, 잘될 곡에 대한 촉이 있나.
"촉이 왔던 곡이 오히려 잘 안되는 경우가 더 많다.(웃음) 촉이 안 왔던 곡이 더 잘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런데 이건 신인 가수들에게만 해당한다. 예를 들어 트와이스 같은 대세그룹에게 곡을 준다고 하면, 그들은 흥행이 보장돼있지 않나. 오히려 내 곡으로 인해 상승세가 주춤하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이 있을 뿐 흥행에 대한 걱정이 없다.
하지만 신인 가수의 경우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씨엔블루 '외톨이야' 작업할 땐 이렇게까지 잘될지 몰랐다. 발표하자마자 2주 만에 1위를 휩쓸면서 그야말로 메가 히트를 쳤다. 이런 촉이 정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