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3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청와대에서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전체회의를 주재했다. 청와대는 그동안에도 대화와 제재 노선을 애매하게 오갔는데, 이날도 그동안의 대화 노선을 계속할지 아니면 대북 기조를 바꿀 것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북을 향해 "분노" "강력한 응징" 같은 용어를 사용했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당분간 남북대화 중단 등 대북 정책의 상당 부분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번 핵실험이 문 대통령이 제시했던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었는지에 대해선 "아직 가야 할 길은 남아 있다"고 했다.

무거운 발걸음 -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이낙연(문 대통령 왼쪽) 국무총리, 조명균(문 대통령 오른쪽) 통일부 장관 등과 함께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문 대통령은 NSC 전체회의에서 "이번 도발은 유엔 안보리 결의의 명백한 위반일 뿐 아니라 국제 평화 안정에 대한 매우 심각한 도전으로 강력히 규탄한다"며 "참으로 실망스럽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연이은 도발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뿐 아니라 세계 평화를 크게 위협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더욱 가중하는 전략적 실수를 자행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이번 도발에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강력한 응징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북한의 도발을 결코 묵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외교안보 부처는 북한이 핵·미사일 계획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방법으로 포기하도록 모든 외교적 방법을 강구하라"고 했다. 군(軍)에는 "한·미 동맹 차원의 연합 방위 태세를 토대로 적극적 대응 방안을 준비해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문재인 대통령 "北 핵실험, 실망스럽고 분노…"]

청와대는 대북 정책의 변화도 시사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북 정책의 전면 전환이라고 하긴 어려워도 상당 부분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지금 상태로는 북한과의 대화는 어렵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설정한 선(線)을 북이 넘은 이상 6차 핵실험 이전과 이후가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대북 군사회담과 적십자 회담을 제안한 '베를린 구상'을 공식 철회하지는 않았지만, 남북대화에 대한 기대는 당분간 접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날 대외적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고 발언하는 이른바 '백그라운드 브리핑'에서는 기조가 다소 달랐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대북 정책은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통해 긴장이 조성되더라도 군사적 수단이 아닌 외교적 수단으로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기본 기조는 유지하겠다는 뉘앙스였다. 또 이 관계자는 북한의 이번 핵실험이 '레드라인'을 넘은 것인지 여부에 대해 "북한 스스로도 'ICBM 완성 단계 진입'을 위해 이번 실험을 했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여전히,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남아 있다고 본다"며 "아직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제시했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무기를 탑재하는' 레드라인을 북이 넘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핵실험 이후에도 청와대가 대북 대응 수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북한과 계속 대화를 이어 가겠다는 것인지 등 대북 정책 방향을 놓고 혼선을 빚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편 이날 NSC 전체회의에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이낙연 국무총리, 송영무 국방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정의용 실장은 NSC가 진행되던 오후 1시 45분(한국 시각)부터 30분간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해 북한 도발 대응을 논의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