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25)은 잉글랜드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올해 여름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썼다. 유럽 무대에서 총 21골을 터뜨려 차범근(64)이 독일 레버쿠젠 시절(1985~86시즌) 세운 한국인 한 시즌 유럽 최다골(19골) 기록을 31년 만에 갈아치웠다. 박지성(36)이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8시즌 동안 기록한 총득점(27골)도 2시즌(29골) 만에 넘어섰다. 손흥민은 어느새 한국 축구의 얼굴이 됐다.

하지만 그는 최근 '태극 마크'만 달면 초라해졌다. 최근 A매치 10경기에서 손흥민이 넣은 골은 단 1골이다. 작년 10월 카타르전 홈경기에서 기록한 것으로, 이제 그의 대표팀 골 가뭄은 300일을 넘겼다. 연도별로 따져봐도 2013년 A매치 4골, 2014년 2골, 2015년 9골을 넣었던 손흥민은 지난해 1골에 그쳤고 올해는 '0'골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이란과의 홈경기에도 풀타임 출전했지만, 위협적인 슈팅 한 번 날리지 못했다.

손흥민의 부진 속에 월드컵 본선 진출 조기 확정 기회를 눈앞에서 날린 한국은 5일 밤 12시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 우즈베키스탄전을 '단두대 매치'로 치르게 됐다.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을 반드시 잡아야 조 2위로 자력 진출할 수 있다. 비기거나 패하면 복잡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한다.

극과 극인 손흥민의 모습에 축구계에선 "대표팀에서 손흥민이 홀로 부담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해리 케인과 델리 알리(이상 잉글랜드), 크리스티안 에릭센(덴마크) 등 각국을 대표하는 스타들과 호흡을 맞춘다.

31일 이란과의 홈경기를 0대0으로 마친 후 망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손흥민. 지난 1년 사이 한국 축구 ‘역대급 공격수’로 올라섰지만 국가대표팀에서만큼은 힘을 쓰지 못했다. 우즈베키스탄전을 앞두고 축구팬들은 그의 한방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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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대표팀에선 '외로운 에이스'다. 이 때문인지 그는 대표팀에만 오면 유독 공을 끌거나 무리하게 슈팅하는 등 자신이 해결하려다 실패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상대의 집중 견제도 받았다. 이란전에서 좌충우돌했지만 소득이 없었던 손흥민은 "내가 상대 11명을 모두 제칠 수는 없다"며 답답함을 표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표팀은 '손흥민 딜레마'로 고심하고 있다. 아무리 손흥민이라도 부진이 계속되면 제외해야 하지만, 그를 대체할 선수도 마땅치 않은 상황을 뜻한다. 슈틸리케 전 감독과 신태용 현 감독 체제하에서 손흥민은 언제나 제1옵션이었다.

전문가들은 "손흥민이 잘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공간 침투와 순간 슈팅력이 장점인 손흥민에게 공격 조율이나 개인 돌파까지 요구하면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며 "손흥민이 제대로 슈팅할 조건을 만들어 줘야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팬들은 우즈베크전을 앞두고 손흥민이 과거 경험을 떠올리길 바라고 있다. 2015년 호주아시안컵 당시 손흥민은 8강 우즈베크전(2대0 승)에서 내내 부진했지만 연장에만 2골을 터뜨리며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5일 우즈베크를 반드시 이겨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손흥민의 결정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손흥민을 비롯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2일 오전 타슈켄트 현지에 도착해 분요드코르 경기장 보조구장에서 몸을 풀었다. 오른팔에 붕대를 감은 손흥민은 비장한 표정으로 훈련에 임했다. 신태용 감독은 "상대 전력 분석은 끝났다. 무실점으로 이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