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우상(偶像) 앞에는 돈이 수북이 쌓인다. 권투선수 메이웨더와 격투기 선수 맥그리거는 오직 30분만 뛰고 각기 2000억원과 1000억원을 벌었다고 나온다. 스포츠 스타는 현대인의 우상이다. 두 선수가 받은 돈은 결국 신자(시청자)들이 갖다 바친 헌금이 아니겠는가! 우상은 또 있다. 바로 연예인이다. 유명 배우와 가수들도 공연 한 번에 수백, 수천억씩 번다. 우상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돈을 벌 수 없다. 이 돈도 역시 열성 신도들이 갖다 바친 돈이다.

신(神)은 밥 굶고 있는데 우상은 배가 터진다. 21세기의 우상은 바로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이다. 양대 우상이 활동하는 공간은 선수가 뛰는 스타디움과 연예인이 가무(歌舞)를 보여주는 극장인 것이다. 스타디움과 극장이 죽어버린 신을 대신해서 대중을 흡인하고 있다는 중간 결론에 도달하고 보니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그리스 델피신전.

그리스 고대 신탁소(神託所)로 유명한 델피(Delphi) 신전의 공간 배치이다. B.C. 1500년 전부터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중해 일대에서 전쟁과 정치적 결정을 좌우했던 신전이 바로 델피이다. 델피 신전은 아폴론을 주신으로 모셨다. 그런데 해발 700m의 바위산 언덕에 자리 잡은 델피 신전에는 운동경기를 하는 스타디움과 공연을 할 수 있는 계단식 극장이 언덕 위에 설치되어 있다. 왜 신전에 스타디움과 극장이 들어서 있단 말인가? 스타디움과 극장은 그리스의 다른 고대 신전에도 역시 동일하게 배치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스포츠와 극장을 신의 좌청룡 우백호로 여겼다는 뜻인가. 아니면 신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스포츠와 극장이 필요하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신의 자비심이 스포츠와 극장의 즐거움으로 나타난다는 것일까.

서양 고대문명에서 신을 섬기는 신전의 부속 건물이었던 스타디움과 극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신전에서 따로 떨어져 나왔다. 신성(神聖)으로 다가가기 위한 수단에서 이탈하여 오락적 기능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것이 오늘날 우상이 된 것이다. ‘미개인은 돌과 나무로 된 우상을 섬기지만, 문명인은 살과 피로 된 우상을 섬긴다’는 말이 있다. 압도적인 우상의 위력 앞에서 이성을 챙기면서 사는 일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