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뉴욕타임스 등 미국 진보 언론은 트럼프 미 대통령을 "공약을 지키지 않는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한다.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부터 중국 환율 조작국 지정, 오바마 케어 폐기 등과 관련해 수없이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을 취임 초부터 본 기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막말과 튀는 행동으로 스스로 점수를 까먹었지만 자신의 주요 공약을 완전히 뒤집은 적은 없다.

국경 장벽 건설은 그의 주장대로 멕시코가 돈을 대지는 않지만 정부 예산으로 편성됐다. 오바마 케어 폐지는 하원은 통과했지만 상원의 벽에 막혔을 뿐이다. 중국 환율 조작국 지정 문제도 그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남겨둔 것"이라며 대신 중국 기업들에 대한 지식재산권 조사를 명령해 무역 전쟁의 신호탄을 쐈다. 공약을 100% 지키지는 못했지만 완전히 빈말을 했다고 할 수도 없다.

미국 언론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가려 들을 필요가 있다. 미국 진보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무부와 환경보호청 예산 30% 등 총 540억달러(약 61조원)의 예산을 삭감해 '미국의 가치'가 흔들린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임의로 쓸 수 있는 '재량 예산'만 삭감했지 급여와 계속 사업에 들어가는 '고정 예산'은 손대지 않았다는 사실은 보도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예산은 재량·고정 예산을 합해 발표하지만, 미국은 예산 규모가 너무 커 재량 예산만 주로 발표한다. 우리 식으로 고정 예산까지 합해 계산할 경우 삭감된 예산은 미국의 1년 총예산 4조달러(약 4540조원)의 1.35%에 불과하다. 1.35% 예산 삭감을 두고 '미국의 가치' 운운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21일(현지시각)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포트마이어 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관련해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 무능에 미국 경제 헛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 시각) 미군 증파(增派) 등을 포함한 새로운 아프가니스탄 전략을 발표하면서 "지는 전쟁에 지쳤다"는 말로 강한 군사 압박을 선언했다. 그러자 진보 언론들은 "후보 시절의 아프간 철군 약속을 바꿨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3년 트위터에서 '아프간에서 더 이상 생명이 낭비돼서는 안 된다'면서도 '하지만 미국이 다시 (아프간에) 가야 한다면 반드시 거칠고 빠르게 해야 한다'고 했었다. 핵심 메시지는 사실상 그대로였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쏟아낸 '화염과 분노'란 단어를 말싸움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취임 초부터 명확했다. 그는 당선 뒤 트위터에서 '(북한이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고,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핵·미사일에 대한 '예방 전쟁'까지 언급했다. 조셉 던포드 합참의장은 "북한이 미국에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트럼프를 향한 미국 언론의 조롱이 아니라 그의 '입'이다. 트럼프가 북한에 "행동할 것"이라고 수차례 경고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