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의 무게는 145g 정도다. 하지만 가볍다고 얕보면 큰코다친다. 투수가 던지고, 타자가 쳐낸 공은 못해도 시속 100㎞를 훌쩍 넘어간다. 제대로 맞으면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5일 NC전 선발로 나선 KIA 양현종도 지름 7㎝짜리 야구공 때문에 십년감수했다. NC 박민우의 타구가 그의 '중요 부위'를 강타한 것. 다행히 양현종이 투수로선 드물게 낭심 보호대를 차고 있었기에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양현종은 "확인해 보니 보호대가 찌그러져 있었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했다.

최근 프로야구 선수들은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將帥)처럼 무장한다. 온몸을 보호 장비로 덮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호대로 중무장하는 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부상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다. 아무리 실력 좋은 장수라도 몸을 다치면 무슨 소용인가.

프로야구 선수들은 마치 전장에 나서듯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호대를 덮어 혹시 모를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KIA 나지완이 각종 보호 장비를 차고 타석에 선 모습. 검투사 헬멧과 팔꿈치·정강이·발등 보호대 등으로 온몸을 무장했다.

가장 눈에 띄는 장비는 이른바 '검투사 헬멧'이다. 기존 헬멧에 보호대를 덧대 타자의 얼굴 절반을 가리도록 만들었다. 'KBO 1호 검투사'는 강타자로 유명했던 심정수(은퇴)다. 그는 2001년 6월 롯데 투수 강민영의 공에 왼쪽 광대뼈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다. 한 달 만에 타석에 복귀한 심정수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검투사 헬멧을 썼다. 몸쪽 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였다. 지난 시즌 KIA 나지완이 이 헬멧을 착용한 데 이어 올해는 박용택과 최재원(이상 LG), 최준석(롯데) 등이 검투사로 변신했다. 나지완은 "새 헬멧 덕분에 몸에 붙는 공에 자신감이 커졌다. 타격에 방해는 안 된다"고 했다.

한 프로야구 구단 관계자는 "예전엔 선수들이 가볍고 쓰기 편한 헬멧을 원했는데 요즘은 다소 무겁더라도 단단하고 안전한 걸 찾는다"고 말했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선 투수용 헬멧도 등장했다. 하지만 크기가 커 투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사용하는 선수는 극소수다. 팔꿈치와 정강이, 발등을 덮는 보호대는 이젠 선수들 사이에서 일반 장비가 됐다.

1989년 현역시절 이만수. 장갑만 꼈을 뿐, 팔꿈치·정강이·발등 보호대는 없다.

[17승 챙긴 양현종, 보호대 덕에 살았네]

하지만 프로야구 초창기만 해도 배팅 장갑만 달랑 손에 끼고 타석에 서는 경우가 많았다. 다양한 장비가 없기도 했지만, 지금과는 '야구 문화'가 달랐다. 그 시절엔 보호대 차는 타자를 겁쟁이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80년대만 해도 보호대를 차면 '겉멋이 들었다' '투수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 같은 부정적인 말을 들었다"며 "공을 맞고 나서야 추가 부상을 막으려고 보호대를 착용했다"고 했다. 현역 시절 최고의 홈런 타자였던 이만수 전 감독은 주로 '당겨치는' 유형이었다. 이 전 감독은 "내가 친 타구에 정강이를 하도 많이 맞아 곪아서 수술까지 한 적도 있다"며 "그래도 눈치가 보여 보호대를 착용하지 못했다"고 했다.

'양현종 사건'으로 주목받은 낭심 보호대는 사실 포수들의 필수품이다. 착용감이 불편해 투수와 야수 대부분이 착용하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사용하는 선수가 늘고 있는 추세다. MLB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코치 생활을 한 이만수 전 감독은 "미국에선 감독·코치까지 의무적으로 (낭심) 보호대를 한다. 리틀 야구 때부터 습관이 배기 때문에 성인이 돼서도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야구계에선 2000년대 중반 이후 'FA(자유계약선수) 대박'이 크게 증가하면서 부상 관리에 대한 선수들 관심이 급증했다고 본다. 건강한 몸으로 꾸준히 경기에 나서는 게 가치 있는 선수의 확실한 기준이 된 것이다. 이순철 위원은 "선수가 부상 없이 좋은 성적을 보여주는 건 곧 팬들에게도 긍정적인 부분"이라며 "앞으로도 선수를 보호하는 장비의 진화가 꾸준히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