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미만 미성년자에게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가하거나 이들을 방임하는 아동 학대가 급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 학대 건수는 2012년 6403건에서 지난해 1만8573건으로 약 3배로 늘었다. 계모의 학대로 일곱 살 아이가 숨진 '원영이 사건', 엄마의 동거남이 휘두른 주먹에 맞아 실명한 '지호 사건'…. 이런 뉴스가 전해질 때마다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법적 처벌도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막상 학대당한 아이들이 그 후 어디로 가는지, 어떤 보호를 받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다. 전문가들은 "아동 학대 피해자는 성년이 된 후에도 후유증에 시달리곤 한다"며 "아이들의 상처를 제때 치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8월 경북의 한 학대피해아동쉼터에 아홉 살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세 살 때부터 친할머니와 친아빠에게 학대당했다. 조울증이 있던 할머니는 "우리 손자"라며 잘해주다가도 기분이 나빠지면 아이를 때리곤 했다. 아빠 역시 "너 때문에 이 지경이다.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는 욕설을 퍼부었다. 온몸에 멍이 생길 때까지 때렸다. 지난해 할머니가 "같이 죽자"며 아이를 여관으로 데리고 갔다가 여관 주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구조됐다.

보호소인 쉼터에 온 아이는 자기보다 약한 친구를 때리기 시작했다. 친구를 운동장에 눕혀 놓고 나방을 입에 넣었다. 학교 담임은 "감당이 안 된다. 나는 그 아이가 무섭다"고 했다. 쉼터 원장은 "그 아이를 나이대가 비슷한 친구들이 모여 있는 다른 쉼터에 보내는 게 낫다고 판단했지만, 연령별로 나뉜 쉼터가 없어 포기했다"고 했다.

학대 피해 아동 중에는 강한 공격성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전문적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한 쉼터는 턱없이 부족하다. 쉼터는 아동 학대 경험이 있는 아이들을 심리 치료하면서 데리고 있는 일종의 그룹홈이다. 학대 피해 아동을 사회복지사들이 100㎡ 일반 아파트나 빌라에서 24시간 근무하며 돌본다. 전문 심리치료사와 치료실을 갖추고 한 쉼터당 5~7명의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그런데 이런 쉼터가 전국에 55곳밖에 없다. 서울에는 단 한 곳도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 2곳이 새로 문을 열 예정이고, 현재는 50명을 수용하는 임시 보호 시설이 역할을 대신한다"고 했다. 쉼터가 부족하다 보니 초기 상담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입소해도 대부분 2~3개월 안에 나가야 한다. 한 쉼터 관계자는 "새로운 아이가 들어오면 기존 아이 중 '누가 그나마 나은 상태인지'를 판단해 내보내는 것이 고통"이라고 했다. 경기도에서 쉼터를 운영하는 황선희 원장은 "아이들이 치료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다른 일반 시설로 보내지는 게 다반사"라고 했다.

지난해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학대 신고를 받고 출동한 후 가정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온 사례는 총 4087건이다. 학대 정도가 중하거나 재학대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한 경우다. 이 중 쉼터를 이용한 아이는 1030명뿐이다. 나머지는 친척이 맡거나 보육원 등 일반 시설로 보내졌다. 원칙적으로는 일단 쉼터에 들어온 뒤 상황에 따라 아이를 가정에 돌려보낼지 장기 보호 시설에 입소시킬지 결정해야 한다. 2014년 아동학대특례법 시행 이후 학대 부모와 피해 아동을 즉시 분리하는 건 가능해졌는데, 정작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쉼터는 부족한 셈이다.

일반 아동 보호 시설은 학대 피해 아동을 받기 꺼려 한다. 위험한 물품을 휘두르는 등 아이들과 관리자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아이들은 여러 시설을 전전하다 더 상태가 악화되기도 한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강동훈 상담사는 "특히 학대 후유증으로 장애가 생긴 아이는 절대 받지 않으려 해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피해 아동을 위해 응급조치와 보호를 제공하는 쉼터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배화옥 경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피해 아동 상당수가 그룹홈이나 보육원 등 일반 보호 시설에서 생활하는 게 현실"이라며 "연령별·장애 정도 등에 따라 쉼터를 세분화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필요한 경우 쉼터에서 2~3년 장기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7곳이 추가 개소될 예정이고, 앞으로도 예산을 확보해 매년 쉼터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