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지옥의 문을 여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 문을 열면 어떤 것이 발등 위로 떨어질까. 깊숙이 박혀있는 저 검은 봉지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서랍 안에 든 덩어리는 몇 년간 여기 있었던 것일까. 화석이 된 걸까. 분명 집어넣은 것은 나인데 무엇이 있는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편하고 고마우면서도 미스터리하고 두려운 영역이다. 냉동고가 편하고 고마운 사람들은 이글을 뛰어넘자. 미스터리하고 두려운 사람들에게 주는 냉동고 식재료 보관부터 해동tip을 시작한다. 냉동고, 그 지옥의 문을 바꿔보자.

얼린 음식에는 균이 없을 것 같지만 얼음이나 아이스크림에서도 식중독균인 병원성 대장균이 검출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냉동하면 세균이 죽는 것은 아니고 증식을 멈춘 상태이므로 지나치게 장기간 보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섭취 시에는 충분히 익혀 먹어야 한다.

한국 소비자원에 따르면 가정용 냉동실 온도는 영하 18도 이하로 유지해야 부패 위험이 완전히 낮아진다. 식품에 주로 발생하는 곰팡이와 효모도 영하 18도 이하면 번식이 억제된다. 냉동 보관 온도를 지키지 않았거나, 유통 도중 제품이 녹았던 적이 있으면 대장균이 증식할 수 있다.

구매한 식품의 양이 많을 경우 1회 조리단위로 나눠서 밀봉한 뒤 냉동 보관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 열처리하지 않은 축·수산물은 식중독 세균에 오염되어 있을 우려가 있으므로 신선식품과 구분해 보관한다. 일단 한번 해동하면 식재료의 맛과 식감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해동하는 과정에서 세균이 번식할 수 있어서 한번 해동한 재료는 다시 냉동하는 것은 삼간다.

주부에게 냉동실은 살림의 핵심 공간. 금방 먹지 않을 식재료는 일단 냉동실에 넣어두어야 안심이다. 지방에서 어렵게 공수한 태양초를 일 년이 넘도록 신선하게 먹을 수 있고, 제철 갈치도 필요할 때마다 한 토막씩 구워 먹을 수 있는 것도 냉동실 덕분. 하지만 일단 얼린 식품은 한참을 들여다봐도 오리무중일 때가 많다. 비닐 백에 담겨 있는 찰떡이 깐 새우로 보이기도 하고, 고깃덩어리는 안심인지 삼겹살인지 헷갈리기 일쑤다.

필요한 재료를 바로바로 찾고 싶다면, 얼릴 때도 원칙이 필요하다. 양념은 플라스틱 용기에, 각종 부재료는 지퍼 백에 담고 겉면에 날짜와 품목을 써두는 것이 좋다. ▶더보기

냉동실에 재료를 넣어둘 때는 가로로 쌓기보다 세로로 쌓는 것이 좋다. 훨씬 많이 넣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꺼내기도 쉽고 한눈에 알아볼 수도 있어 좋다. 또 냉동식품은 포장을 벗기고 지퍼 백 등에 담아두면 부피가 줄어 냉동실을 훨씬 넓게 쓸 수 있다. 냉동실이 너무 비어있으면 전력 소비가 늘어나므로, 적당히 채우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이다.

채소는 뜻밖에 많이 버려지는 식재료다. 한단, 한 묶음씩 파는 재료를 사다 보면 꼭 남아 버리게 된다. 채소는 요리하기 직전의 상태까지 완전하게 재료 손질을 해서 냉동하도록 한다.

감자, 고구마 등은 익힌 다음 식혀서 냉동한다. 양파, 당근, 무, 생표고 등은 씻어서 물기를 제거한 후 용도에 따라 잘게 썰어 날 것을 냉동한다.

시금치, 콩나물, 부추, 브로콜리 등 쉽게 무르거나 수분이 많은 채소는 살짝 데쳐서 물기를 뺀 다음 사용하기 쉬운 크기로 잘라 냉동한다.

조개, 새우, 오징어 등의 해물은 해감이나 밑 손질을 해서 물기를 뺀 뒤 냉동한다. 생선은 내장과 아가미를 제거하고 잘 씻어 물기를 뺀 다음 한 덩이씩 랩으로 싸서 냉동한다. 랩으로 싼 뒤 다시 비닐로 잘 포장해야 비린내가 새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명란젓, 새우젓 등 젓갈류는 밀폐 용기 등에 담아 그대로 냉동하면 된다.

고기는 랩으로 싸서 두꺼운 비닐에 싸서 냉동한다. 냉동하기 전 식용유 등을 겉면에 바르면 기름막이 형성돼 고기의 수분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 뱅어포, 멸치, 굴비, 김 등의 건어물은 종이 타월로 싼 다음 밀봉하여 냉동하면 좋다.

밥을 넉넉히 지어 각각의 공기에 1인분씩 담아 비닐 랩으로 꼭꼭 싸서 냉동한다. 그때그때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으면 갓 지은 밥처럼 맛있다. 이때 가능하면 밥통을 열자마자 조금이라도 김이 덜 빠져나갔을 때 싸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제대로 냉동된 고기 등은 보통 6개월, 해산물은 3~4개월, 염장한 생선은 1년, 건어물은 6개월, 채소류는 1개월, 양념이 된 국, 찌개 등은 1개월, 빵과 떡 등의 간식은 3개월, 치즈 6개월이라 권장하지만 되도록 모든 재료는 길게 잡아도 6개월 이내에 소진하는 것이 좋다.

냉동실에 보관된 식품들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대로 해동해야 한다.

어쩌다 요리를 하려다가도 냉동된 재료를 해동하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하게 된다. 해동이 어려운 것은 꽝꽝 언 재료를 녹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요리하기가 쉽지 않고 해동한 재료로 요리 하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식품 고유의 특성에 따라 얼리는 방법이 달랐듯 해동법도 다르다. 또한 같은 재료도 어떻게 조리할 것인가에 따라 해동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해동 버튼만 누르면 전자파(Microwave)가 식품을 투과해 식품 속에 함유된 수분을 진동해 열을 발생시킨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다만 얼마나 돌려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어 해동하다 익어나오는 경우가 다반사.

열전도율이 좋은 금속 위에 두면 빨리 녹는다. 집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알루미늄 쿠킹포일이나 스테인리스로 된 싱크대 위, 금속으로 된 프라이팬 등에 두면 빨리 녹는다. 요즘은 해동트레이라는 것도 등장했다.

진공 포장 또는 제대로 밀폐시킨 식재료를 찬물에 담가준다. 그냥 담그는 것 보다 흐르는 물에 담그면 해동 속도가 더 빨라진다. 어패류를 흐르는 물에 해동할 때에는 찬물에서 4시간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사용 하루 전쯤에 냉장실로 옮겨서 서서히 해동한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상온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변수(세균 번식 등)에도 안전한 편이다. 이왕이면 온도가 더 낮고 온도차가 적은 김치냉장고가 더 좋다고 한다.

온도 0도~2도 정도의 차가운 물에 잘 밀봉한 식재료를 담가 해동한다.

한 번 녹인 고기는 다시 얼리면 맛이 변질되고 쉽게 상하므로 다시 냉동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 따라서 고기를 녹일 때는 양 조절에 특히 신경 써야 한다. 무리하게 빨리 녹이면 모양이 흐트러져 볼품없이 되고, 육질이 흐느적거려 요리하기에 불편할 뿐 아니라 맛도 떨어진다. 냉동 고기는 먹기 하루 전에 냉장실에 옮겨놓는다. 포장을 뜯지 않은 채 저온(2~4℃)에서 천천히 녹여야 맛있는 육즙이 빠져나오는 양이 적다.

생선은 포장된 상태로 흐르는 물에 담가 녹인다. 급할 때는 생선을 꺼내 소금물에 직접 담그면 육질이 쫄깃해진다. 상온에서 해동하게 되면 생선 고유의 수분이 빠져나가 조리했을 때 육질이 질기고 영양분도 파괴된다.

조개류, 새우 같은 경우에는 10℃ 정도의 소금물에 담가 해동하면 조갯살이 오그라들지 않고 원래 맛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상온에서 녹이면 물이 생기고 세균 감염의 위험이 있다.

해동하지 않고 바로 요리한다. 녹으면 곤죽이 되어버려 고유의 식감도 사라지고 향도 살리기 어렵다. 데친 채소는 상온에서 녹이면 물이 생기고 세균 감염의 위험이 있다. 또한 수분이 빠져나가 아삭거리는 맛을 잃고 만다. 국 끓일 때는 그대로 넣는다. 나물을 무칠 때는 찬물에 담가두었다 어느 정도 풀리면 물기를 짜내고 조리한다.

언 마늘은 국물 요리를 할 때 바로 사용한다. 1주일 분량씩 꺼내 냉장실에 두고 먹어도 괜찮다. 상온에 잠깐 두어도 금방 물이 생기고 고유의 매운맛도 사라진다. 파와 고추는 깨끗하게 씻어서 썬 다음 밀폐 용기에 담는다. 언 상태 그대로 국물 요리에 활용한다.

빵은 먹기 20~30분 전 상온에 꺼내 놓기만 하면 된다. 냉동 상태 그대로 토스트 해도 된다. 단 과일이 들어간 것은 자연 해동한다. 찹쌀로 만든 떡은 실온에 두면 금세 말랑말랑해진다. 일반 떡은 실온에 그대로 두면 금방 해동되지 않는다. 구워 먹을 때는 녹이지 않고 약한 불에 바로 요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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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20도 이상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한 바이러스도 있으므로 식중독은 여름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처치 못 한 음식을 눈에 띄지 않게 냉동실로 보내버리고 제대로 보관했다고 방심하면 어느 순간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사실.

식재료를 남지 않게 구입하는 것이 첫 번째. 구입한 후에는 제대로 보관하고 사용하면 '지옥의 문'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이다.

■참고: 혼자 먹는 식사, 김영사
여성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