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미사일 문제로 마주보고 돌진하던 미·중이 일단 충돌 직전 브레이크를 잡았다.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대북 제재안에 합의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중국에 대한 무역 보복 조치 발표를 연기한 것이다.

먼저 난항을 겪던 유엔 안보리의 추가 대북 제재 합의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류제이(劉結一)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3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에 "우리는 일정 시간 (합의를 위해) 매우 노력했다"며 "만장일치 결의가 이뤄질 것을 확실히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유엔 결의안은 미·중이 먼저 큰 틀에서 합의한 뒤, 러시아·영국·프랑스 등 다른 상임이사국들과 추가 논의하는 방식으로 채택돼 왔다. 외교 소식통은 "미·중이 합의하면 나머지 상임이사국은 따라오는 분위기"라고 했다.

유엔 추가 제재안은 지난 4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이후부터 논의됐다. 그러나 협상은 지난달 30일만 해도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북한과 대화 시간은 끝났다"며 "대북 압박을 현저하게 강화하지 않는 추가적 안보리 결의는 가치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합의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헤일리 대사는 "중국은 (북한에) 결정적 조치를 취할 것인지 결정해야만 한다"고도 했다.

그동안 미국은 추가 제재안에 대북 원유 공급 차단, 북한 해외 노동자 고용 금지, 항공 및 해양 운항 제한, 김정은 실명 제재 등 고강도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중국은 원유 공급 차단은 자국 대기업 피해 문제, 북한 노동자 금지는 중국 내 노동자 인권 문제와 맞물릴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 합의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대북 원유 금수 조치에선 한발 물러서는 대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경제활동에 실질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제재 조치를 상당수 포함시킨 것으로 안다"고 했다. 최근 북한에 석유 제품 수출을 대폭 늘린 러시아도 원유 완전 차단에는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 주변에선 안보리가 곧 추가 대북 제재안을 발표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던 안보리 추가 제재의 돌파구가 열린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트위터에 "중국에 매우 실망했다"며 "그들(중국)은 말만 할 뿐 우리를 위해 북한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한 것과 관련 있어 보인다. 중국도 미국 대통령의 직접적 불만 표출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우리 측 인사를 만나 "중국과 물밑 대화를 계속 하고 있고, 우리(미국)는 중국을 압박할 도구가 있다"고 했었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들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불공정 무역 행위에 대해 징벌적인 관세를 매길 수 있는 통상법 301조를 중국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일제히 보도했었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이 WTO(세계무역기구) 구성원으로서 WTO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반응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4일로 예정됐던 대중 무역 보복 조치 발표를 연기했다"고 전했다. 미·중 간 '무역 전쟁' 직전에 양국이 안보리 추가 대북 제재의 합의점을 찾으면서 '발포'를 멈췄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이날 세계 1·2위 경제 대국의 충돌은 "서로 상당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WSJ는 이날 "중국의 지식재산권 도용이 문제이지만, 중국은 현재 세계 2위 시장"이라며 "미국 업체들도 중국의 보복을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고위 관리와 관영매체들은 "미국의 무역 보복에 맞대응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안보리 합의에 러시아가 아직 걸림돌이라는 분석도 있다. 바실리 네벤샤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이날 "아직 상임이사국 간 합의가 없다"며 "추가 대북 제재에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이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통화를 했다. 두 사람은 오는 6~8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만나 북한 문제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한 유엔 소식통은 "지금껏 러시아가 대북 제재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꽤 있었지만, 미·중이 합의한 대세를 거스른 경우는 드물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