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Books 팀장

초등생 막내는 스킨십의 제왕입니다. 모두를 제치고 엄마를 독점하죠. 팔을 껴안거나 핥지 않고서는 잠자리에 들지 않습니다.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는 힐난도, 숨 턱턱 막히는 열대야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특히 형의 '침략'은 반발자국도 허용하지 않죠. 동생 원하지 않느냐고 넌지시 떠봤지만,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더군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를 왜 나눠야 하느냐는 항의였습니다.

영국의 인류학자 애슐리 몬터규(190 5~1999)의 '터칭'(Touching·글항아리刊)을 읽었습니다. 그는 기능주의 인류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말리노프스키(1884~1942)의 첫 번째 제자. 막내가 왜 그렇게 제 엄마와의 스킨십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생물학적, 의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철학적, 정신분석학적 답변이 이 안에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이보다 엄마에게 그 스킨십이 더 좋다는 사실까지도요.

1971년에 초판이 나온 책이라 시간의 마모(磨耗)가 없지 않지만, 이 책을 계속 읽게 만든 구절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다른 행성에는 다다를 수 있으면서, 정작 같은 인간에게는 그럴 수 없기 일쑤다."

피부를 건조하게 정의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감각수용기의 터전으로 촉각이 일어나는 자리, 유기체 인간과 환경 사이의 장벽, 독성물질과 외래 유기체에 대한 장벽, 호흡 조력 기관, 세균을 막는 산성 보호막, 스스로 깨끗해지는 자가 청정 기관….

하지만 그런 기능적 정의보다 이 사례가 마음을 더 끌더군요. 미국의 전설적 인생 상담 칼럼니스트 앤 랜더스(191 8~2002)가 독자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답니다. "누군가 당신을 꼭 끌어안으며 다정하게 해준다면 '그짓'은 안 해도 좋겠습니까. '예, 아니요'로 답해주세요." 4일 만에 10만 건이 넘는 여성들의 응답이 쇄도했는데, 72%가 '예'라고 했다는군요.

일언반구 없이 기계처럼 행동하는 자기중심적 남자에게서 얻는 성적 만족보다, 다정한 말과 애정 어린 포옹을 한층 더 원한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이런 반박도 하고 싶군요. 다정한 말과 포옹을 원하는 건 여성만이 아니라고요.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터칭'을 갈구하기 마련이죠. 어루만져야 커집니다, 사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