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링허우|양칭샹 지음|김태성 옮김|미래의창|312쪽|1만4000원

"우리가 얻은 것은 쇠사슬이요, 잃은 것은 세계 전체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선언'에 실린 유명 문구를 뒤바꿨다. 중국 런민대 문학박사 출신이자 중국현대문학관 객좌연구원인 저자 양칭샹(37)은 1980년대 태어난 중국 '바링허우(80後)' 세대를 대변하며 이렇게 썼다. 바링허우는 중국에 1가구 1자녀 정책이 도입된 1979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 개혁개방의 과실을 자라나면서 누렸던, 소비 수준은 높지만 곱게 자라 버릇은 없는 '소황제(小皇帝)' 세대로 익숙하다. 아쉬울 것 없이 행복해야 할 사람들. 그러나 본인도 1980년에 태어난 바링허우 세대 저자는 G2로 부상한 중국의 그늘에 청년들의 고단한 현실이 숨겨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회주의 질서에서 태어나 자본주의에 힘겹게 적응하며, 폭등하는 부동산 값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먼저 중국 젊은 층에게 나돈다는 블랙 코미디부터. 베이징에 있는 5억원짜리 30평대 아파트를 사는 데 걸리는 시간은? 농사꾼은 당나라(618~907년) 때부터 지금까지 밭을 갈아야 하고, 막노동자는 아편전쟁(1840) 때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 화이트칼라는 50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먹고 마실 돈도 없다) 월급을 모아야 한다. "인테리어, 가구, 가전제품 가격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게 양칭샹의 첨언. 소위 '고급 두뇌'인 저자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2004년 1년에 4000위안(약 66만원)이었던 그의 방값은 대학원을 마칠 즈음인 2009년에는 3만 위안으로 7배 이상 뛰었다.

1980년대 30만명이었던 중국 대학 정원은 2000년대 들어서는 400만 이상으로 급팽창했다. 바링허우는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단군 이래 최고학력'이지만, 고학력자가 넘쳐나서 경쟁력을 잃은 세대다. 바링허우의 다른 이름은 '개미족(蟻族)'. 월세 낼 돈이 없어 개미처럼 좁은 공간에서 집단 거주하는 처지를 빗댄 표현이다. 베이징과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 이들은 화장실 칸막이조차 없는 원룸에 몇 명씩 함께 살아간다.

‘개미족’으로 불리는 중국 청년들이 화장실 칸막이도 없는 원룸에서 함께 살고 있는 모습. 중국에서 1980년부터 1989년 사이 태어난‘바링허우(80後)’ 세대는 연애, 취업, 내 집 마련 등이 어려운 중국판‘N포 세대’다.

경제적으로 열악한데 정신적으로도 빈곤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부모 세대인 우링허우(1950년대생)는 가난했을지언정 경쟁에서 자유로웠고, 대기근과 문화대혁명을 극복하고 지금의 중국을 만들었다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바링하우에게 '대국굴기'는 남의 일이다. '한강의 기적'이 '88만원 세대' 'N포 세대'의 것이 아닌 것처럼.

그래서 이들은 역사의 현장을 갈구한다. 2008년 원촨 대지진 당시 바링허우는 앞다퉈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의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한다. "지진이 역사적 축제이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재미있는 연극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우리(바링허우)는 이 연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어째서 재난이 거대한 축제로 변질되는가. 이야말로 우리에게 역사의식이 부재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바링허우는 프티 부르주아지를 선망하며 도회적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소설을 열심히 읽고, '로또 당첨되는 법' 따위의 책을 사본다. 그러나 그 도피는 깨질 수밖에 없는 꿈이다. 현실은 무한경쟁과 끊겨버린 신분 상승의 사다리이다.

중국 소설가 위화는 에세이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에서 "유럽인이라면 400년에 걸쳐 겪었을 파란만장한 변화를 중국인은 불과 40년 만에 겪었고, 현실 속 격차는 중국인이 서로 다른 시대를 살게끔 분열시켰다"고 썼다. 저자의 문제의식도 맥을 같이한다. 그는 "갈수록 우리 세대가 거대한 환상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다"고 적었다.

저자는 한국의 '88만원 세대'처럼 "청년이여 토플책을 덮고 짱돌을 들어라"라는 명확한 구호를 내세우지 않는다. '열패감 극복' '주체 의식의 회복' 같은 추상적 목표를 언급한다. 그리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바링하우들의 모습을 심층 인터뷰를 통해 조명한다. 빈털터리에서 IT기업을 일군 광둥성 둥관(東莞)의 기업가, 그래도 부모 세대보다는 나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선전의 한 회사 직원 등의 육성을 들려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며 사는 중국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목소리이다.

경제적으로야 비슷한 압축성장을 거쳤지만 한국과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중국에서 기존 체제를 날 세워 비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 저자는 동(同) 세대인 바링허우 문필가들은 거침없이 공격하면서도 정부의 책임은 거론하지 않는다. 중국의 '풍요 속의 빈곤'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초반부 얻은 힘이 뒤로 갈수록 빠지는 이유다.

문학 전공자이자 시인 출신 저자가 중국 당대 문학 텍스트를 분석하며 논지를 펴는 방식은 능숙하다. 엄밀한 사회과학적 접근과 통계 정보가 부족한 부분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