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장사익(68)은 지난주 당일치기로 일본 고베에 다녀왔다. 은퇴한 사진기자, 인사동 밥집 주인 이렇게 셋이 갔다. "10여년 전부터 내가 노래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와 점잖게 즐기는 재일교포 자매 네 분이 계셔요. 근데 일흔여섯 셋째 누님이 올봄 죽고, 여든여덟 큰누님은 반신불수 돼서 병원에 있다 이거여. 잠을 못 잤지. 제일 친한 친구들헌테 '야, 가자!' 그랬지."

고베에 도착한 일행은 깜짝 놀랐다. 죽었다던 누님이 살아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누님 순서가 셋째, 넷째 바뀐 거였어(웃음)." 요양원에도 간 그는 큰누님을 위해 노래하고 춤췄다. "'봄날은 간다'를 불렀어요. 내 노래 다 불렀어. 노래라는 게 그런 거여. 3000명 앞에서 부르면 3000개의 기쁨이 되지만 힘들고 고단한 단 한 명의 관객 앞에서 부르는 건 참된 의미가 있구나."

장맛비 쏟아진 지난달 31일 북한산 너른 바위가 마당에 들어앉은 서울 홍지동 집 거실에서 장사익은 눈시울을 적셨다. 안동 고택(古宅) 대청마루를 뜯어 만든 납작 테이블에 질박한 찻사발과 찻잔이 놓였다. 마당 라디오에서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검정 고무신을 신은 장사익이 “영화 ‘쉘부르의 우산’에서 노래하던 카트린 (드뇌브) 언니처럼” 우산을 받쳐 썼다. “솔직히 난 얼굴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 어릴 때부터‘난 그림자만 이뻐’ 생각했는데 노래하고 이튿날부터 항상 웃더라고. 노래하는 게 행복허니께 이젠 백날 찍어도 돋보여요. 헛헛!”

다음 달 장사익은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클래식 야외 음악 축제인 '파크 콘서트'에 나선다. 2013년 소프라노 조수미, 2015년 지휘자 정명훈에 이어 거장 시리즈의 세 번째 주인공이 됐다. 그의 노래는 판소리와 오페라부터 트로트, 재즈까지 경계가 없다. 최근 현충일 추념식에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열창해 실시간 검색 1위에 올랐던 그는 1부에선 허영자 '감', 최산 '국밥집에서' 등 시에 우리 가락을 실은 노래들을 부른다. 2부에서는 턱시도를 쫙 빼입고 '님은 먼 곳에' '동백아가씨' 등 대표곡들을 오케스트라 반주로 들려준다.

지난해 2월 장사익은 성대에서 혹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이상허게 호흡이 짧아지고 목도 서걱거려서 병원에 갔다가 뒤로 나자빠지는 줄 알었어요. 앞이 깜깜허더라고." 수술 후 보름 동안 '무언! 말 없슴. 말 걸지 마요'라고 직접 쓴 명찰을 달고 살았다. 노래도 멈추고 음성 치료에 전념했다.

장사익이 상고 졸업 후 보험회사를 비롯해 직장 열다섯 군데를 전전하다가 마흔다섯에 가수로 데뷔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노래하기 전엔 사는 게 힘들었다. 그때마다 오뚝이를 떠올렸다. "운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날 쓰러뜨리는 놈들도 많었지만 오뚝이처럼 털고 일어나 다시 갔어요. 같이 핵교 다녔던 친구들은 전부 은퇴했어요. 그들 전성기 때 난 밑바닥에 있었죠. 그래서 세상이 재미있어요. 살만하구나!"

그는 운전을 하지 않는다. "지하철, 버스를 타야 사람 냄새를 맡아. 섬처럼 살면 사람 냄새가 떨어져 사람 노래를 못해"라고 했다. 지방 공연 갈 땐 가방 하나 들고 혼자 기차를 탄다. 공연하러 가서 차례가 되기 전 구경하고 있으면 시골 관객들이 그에게 묻는단다. "'그 새끼(장사익) 노래 한가락 한다는데 들어봤수?' 그러면 내가 이렇게 답허죠. '아, 그 새끼 되게 까불던데요.' 공연 오셔서 제가 까부는 모습 보고 박수 치다가 나갈 때는 몸 전체가 깨끗헌 도화지가 돼서 '사는 게 재밌다!' 고거 하나 느꼈으면 좋겄어요."

성대 수술을 받고 기약 없는 침묵 속에서 탄식할 때 그는 아흔셋에 사망한 멕시코 가수 차벨라 바르가스(1919~2012)가 죽기 1년 전 부른 노래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우리 할머니들 노래할 때처럼 음높이도 없이 부르는데 소리를 압축해 불렀어요. 아아… 내가 저렇게 불러야겠다. 힘도 기량도 떨어지고 음정 뭉개지고 목소리도 안 나올 테지만 그때 부르는 노래가 진짜라. 그래서 그 무대를 꿈꿔요. 기맥히잖아요."

장사익 파크콘서트=9월 9일 오후 7시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 (02)318-4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