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에도 새로운 현상과 신조어가 등장했다.


한때 뜨거운 듯했던 그와의 관계, 분명히 헤어진 건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상대가 연락이 안 되고 '잠수'를 탄다. 그런가 하면, 연인도 아닌 그를 계속 주변에 두는 '어장(漁場) 관리'도 있다. 이런 남녀 관계의 신조어, 영어에도 그대로 있다.

미국 뉴욕 매거진은 남녀 간의 이런 새로운 현상과 신조어를 소개했다. 흥미롭게도, 국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고스팅(ghosting)' = '잠수 이별'

고스팅’이 가진 부연 의미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연락을 두절당한 누군가는 ‘힌트’를 알아채야 한다는 것이다.


'고스팅'은 진행되던 연인 관계가 하루아침에 중단되는 현상을 뜻한다. 어느 한 쪽이 그간의 관계를 모두 중단하고 연락을 끊어 마치 '유령(ghost)'처럼 사라진다는 뜻이다. 'ghost him'하면 그 남자와의 관계를 모두 중단한 것을 말한다. 우리말의 '잠수 이별'이라는 유사한 상황.
고스팅을 당한 상대로선 분명히 이별 통보를 받은 건 아니지만, 둘 사이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뜻밖에 많은 사람이 성숙하지 못함과 의사소통 능력의 문제로 인해, 상대를 고스팅한다. "사랑이 식었다"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상대에게 상처를 덜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하는 입장에선 혼란스럽고 불쾌하기 마련이다.

사실 이런 '잠수' '고스팅'은 예전부터 있었던 '이별' 방식이지만, 온라인 데이트 앱이 유행하면서 '고스팅'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데이트 앱·채팅 앱을 통해 항상 누구와 쉽게 연결되지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또 쉽게 관계를 끊고 사라지면서 이런 신조어가 등장한 것 같다고, 심리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거절'은 '물리적 폭력'과 마찬가지로 뇌에 유사한 충격을 준다. 그러나 물리적 피해와 달리 정신적인 고통은 치료가 어렵다. 정신과 전문의는 "조용한 이별이 오히려 당하는 입장에선 답을 알 수 없어, 힘이 빠지는 감정적 학대"라고 말한다.

◇벤칭(benching) = '어장관리'

이렇게 상대방의 마음을 저울질하는 사람을 ‘벤처(Bencher)’라 하며 당하는 사람을 ‘벤치(Benchee)’라고 부른다.


'벤칭(benching)'은 관심이 가는 상대를 실제로 만나서 데이트하지 않으면서 문자나 트위터, 메신저 등의 연락은 간헐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어원(語源)은 스포츠 경기를 생각하면 된다. 벤치에 앉아있는 선수들은 경기에 실제로 뛰지는 않지만, 팀에 속해 있다. 감독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마냥 벤치에 앉아 있다.
남녀 관계에선 최악의 경우다. 관계가 깔끔하게 정리된 것도, 그렇다고 발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장 관리하며 저울질하는 쪽을 '벤처(bencher)', 당하는 쪽을 '벤치(benchee)'라고 부른다. 벤치로선 계속되는 마음 졸임을 포기하려고 하면, 벤처가 항상 '여지를 주는' 메시지를 던진다.

연애 관련 온라인 사이트 '프로젝트 러브(Project Love)'의 연애 전문가 셀리나와 비키는 온라인 데이팅이 유행하면서 이 벤칭이 더 흔한 현상이 됐다고, 뉴욕 매거진에 말했다. "터치 몇 번과 '좋아요' 몇 개로 상대의 관심을 계속 받으면서, 최소한의 노력으로 자신에게 가능한 옵션들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어장관리, 벤칭을 하는 이유는? 비키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결정이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적으로 마음으로 줬다가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낭패라는 생각에, 최대한 '올바른 선택'을 하려 한다고.

내가 특정인의 어장관리(벤칭) 대상에 든 것 같다면, 그와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커피 약속을 잡아보는 것이 좋다. 상대가 미적미적한다면, 그가 던지는 '미끼'를 물지 말아야 한다.


◇'러브 밤(love bombing)' = '집착'

‘조종’의 역할을 맡는 사람은 대부분 나르시시스트이거나 소시오패스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남녀 관계에서 '위험한' 관계를 일컫는 이 단어는 나에게 차고 넘치는 사랑과 관심을 쏟아부었던 그가 어느 날부터인가 '집착'하는 것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나를 각별히 대했던 상대방은 언젠가부터 나를 완벽하게 통제·조종하려 든다. 늘 자신이 내 일상의 1순위여야 한다.

정신과 전문의 데일 아처는 '러브 밤'은 상대에게 과도한 애정과 선물을 폭탄 세례처럼 쏟고는, 관계의 주도권을 잡는 일종의 유혹 기술"이라고 말한다.
아처는 '사이콜로지 투데이' 저널에 "연인의 선물·애정 공세가 꾸준하다면 이는 '러브 밤'이 아니지만, 합당한 이유 없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화를 내고 조종하려 든다면 '적신호'이자, 이는 심리적 학대로 발전한다"고 말했다.

'러브 밤' 관계에 빠진 피해자는 자신이 조종당한다는 사실도 의심하지 못하고 이런 '위험한 관계'에 의존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관계에서 '사랑 폭탄'을 퍼붓고 '조종'하는 이는 대부분 자기애가 강한 나르시시스트이거나 소시오패스일 확률이 높다.

미 UCLA 대의 정신의학 및 생물 행동과학 교수인 조 피에르는 '사이콜로지 투데이'에 "러브 밤을 하는 나르시시스트의 경우 자신감과 야망이 이성(理性)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오만과 허영, 동정심 부족은 상대를 다치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