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정 환기미술관장

어느 다큐 프로에서 본 아마씨는 사랑하는 이를 따라 한국에 와서 가정을 이루고 빵 가게를 운영하는 프랑스 여성이다. 유창한 한국어는 물론, 청국장과 김치를 좋아하고 여섯 살 된 딸을 키우며 이웃과 알콩달콩 어울려 사는 푸근한 '아줌마'다. 전공인 사진작가 활동도 포기하고 풍족지 않은 타국 생활이지만 빵을 구워 나눠주며 웃는 얼굴은 따뜻한 햇살 같다.

20년 전 파리에서 만난 한국 출신 입양 소녀 마리도 아마씨와 같은 나이다. 마리는 당시 파리의 한글학교에 다니던 열아홉 살 소녀였다.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하는 언니 오빠들을 만나자 마리는 금세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

마리는 일곱 살 때 헤어진 엄마의 얼굴과 목소리는 잊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의 손을 놓지 마라"는 당부는 여전히 가슴에 새겨져 있다고 했다. 마리는 동생과 떨어질 기색만 보이면 큰 소리로 울면서 동생의 손을 놓지 않았고, 덕분에 남매는 함께 프랑스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똑순이 마리는 동생을 잘 보살피겠다고 다짐했지만 겨우 네 살이었던 동생은 순식간에 한국말을 잊었다. 10대에 접어든 동생이 양부모를 친부모로, 프랑스를 조국으로 여기자 마리는 왠지 서러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사춘기인 동생이 한국어 배우기를 거부한다며 속상해하기도 했다. 대학생활, 남자친구 등 또래 관심사와는 다른 마리의 고민에 우리는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주려 애썼다. 어린 나이에 외국 가정에 입양돼 자라면서도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하는 마리와 "너의 뿌리를 알라"고 한글학교까지 보내는 양부모님 모두 감동적이었다.

아마씨와 마리 이야기는 20년이란 시간을 뛰어넘는 소중한 메시지를 내게 주었다. 고유의 정체성을 서로 존중하면서 융화와 평화를 일궈가는 세계화! 피부 색깔과 문화, 역사의 다름을 이해하고 소통하며 살아가려는 아마씨와 마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예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