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 올린 초유의 사태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동맹국 정상 중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찾았다. 미·일 정부는 31일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52분간 통화하며 더 강력한 대북 압박을 가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를 조율 중이라고 밝혔지만, 통화 시점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이) 휴가를 다녀온 직후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여름휴가 중인 문 대통령은 오는 5일쯤 청와대에 복귀할 예정이다.

北 문제로 7번째 통화한 미·일 정상

미·일 정상의 전화회담은 총 52분간 진행됐다. 이제까지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 사이에 오간 일곱 차례 전화회담 중 가장 길었다. 양 정상은 그 시간을 모두 북한의 ICBM 도발 평가와 대북 제재·압박에 중점을 둔 대응책 논의에 쓴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오른쪽) 일본 총리는 31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과 관련해 52분간 전화회담을 진행했다. 여름휴가 중인 문재인(왼쪽) 대통령은 오는 5일 청와대로 복귀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 아베 총리와 각각 통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우리가 북한 문제 해결할 것']

[트럼프-아베, "대북 제재·압력 강화해야"]

백악관은 통화 후 "두 정상은 북한이 미국, 일본, 한국, 그리고 가깝고 먼 다른 나라들에 심각하고 점증하는(grave and growing) 직접적 위협이라는 데 동의했다"며 "북한에 대한 경제적·외교적 압박을 강화하고 다른 나라들이 동참하도록 설득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회담 후 자국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과) 상당히 깊숙한 의견 교환을 했다"며 직접 내용을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미·일이 북한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려고 노력해왔지만 북한이 그런 노력을 전부 깔아뭉개며 일방적으로 (위기를) 고조시켜 왔다"면서 "이런 엄연한 사실을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무겁게 받아들이고, 대북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정식 취임한 뒤 반년 동안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위기가 고조된 시점마다 총 7차례에 걸쳐 전화회담을 가졌고, 다른 나라가 끼지 않는 단독 정상회담도 세 차례 했다.

한국과의 통화는 닷새 후에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전화 통화 직후,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통화를 할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시간은 조율 중이지만 휴가 직후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북한의 ICBM급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정세가 민감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가 '휴가 뒤'로 미뤄지자 그 배경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 5월 10일 밤 서울 홍은동 자택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다. 사저에서도 통화를 했던 만큼, 휴가지에서 통화를 못 할 이유는 없다.

우선 문 대통령이 잠시 미루자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 직후인 지난 29일 새벽 1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베를린 구상의 동력이 상실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 행위 중단을 위한 군사당국회담 등 '대북 대화'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문 대통령에게는 미국에서 "(북한과) 대화할 시간이 끝났다"는 말이 나오고, 미·일 정상이 '대북 압박 강화'를 한목소리로 외치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의 통화를 서두르지 않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아베 총리와의 대화에서 보듯, 미국 측은 문 대통령에게 '독자적인 제재를 포함한 좀 더 강력한 대북 압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측과의 제재 협의가 적절치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의 운전석에 앉고 싶다면 그 차에 동승할 사람들과 의견 조율이 돼야 한다"며 "미국과 공조하며 북한의 비핵화란 방향으로 나가겠다는 점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쓸데없는 오해가 생기고 동승자들이 모두 내려버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