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한국에 복수 노조 허용 권고]

문재인 정부가 남들이 가보지 않은 새로운 경제의 길을 가겠다고 한다. 25일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발표한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어느 나라도 본격 추진하거나 성공시킨 사례가 없는 초유의 실험이다. 미국·일본과 유럽의 선진국들도 근로자와 서민층 소득을 늘리는 정책을 펴지만 이는 불평등 해소를 위한 복지·분배 정책에 가깝다. 어느 나라도 소득을 성장의 주력 엔진으로 삼겠다고 하진 않는다.

2012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한 '임금 주도 성장론'이나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서 논의되는 '포용적 성장' 개념 역시 성장 전략이라기보다 불평등에 따른 갈등과 사회불안을 해소하자는 사회 통합의 패러다임에 가깝다. 지속 가능한 성장은 혁신과 생산성 향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수없이 검증되고 입증된 불변의 경제 진리다. 이 길을 놔두고 온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국가 경제를 대상으로 불확실한 실험과 도박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중·하층 소득을 늘려 소비를 촉진시키고 이것이 생산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소득이란 성장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소득 증가가 소비를 늘리는 효과는 있지만 기업 투자의 승수(乘數) 효과를 따라갈 수는 없다. 소득 증대가 성장의 보조 수단이 될 수는 있겠지만 성장 전략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가계소득만 높여놓으면 성장의 선순환에 시동이 걸릴 것이란 낙관론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의문이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후기 케인스주의자들 일부가 제시한 비주류 소수설에 불과하다. 경제학계에선 이 이론에 대해 불황 때의 단기 응급 처방일 뿐 중장기적으로 유효한 성장 전략은 될 수 없다는 판정이 내려져 있다. 비록 어렵기는 하지만 세계적으로 건전하고 정상적인 우리 경제에 예외적인 비상조치를 강제할 경우 어떤 결과가 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해 들어온 세금보다 더 많이 지출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씀씀이의 효율성에서 정부는 민간을 이길 수 없다. 한정된 재원을 정부가 더 많이 가져다 쓰는 것은 국가 경제의 비효율성을 증폭시킬 뿐이다. 이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는 경제학에서 검증이 끝난 이론이다. 같은 돈도 정부가 세금으로 걷어 쓰는 것보다 기업이 투자나 연구 개발 등에 활용하는 것이 훨씬 성장에 도움이 된다.

소득 주도 성장론과 유사한 정책을 폈던 곳이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었다. 모두 국가 파산 위기로 끝났다. 기업 투자와 혁신을 이끌어낼 성장 전략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몇몇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 체질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주력 엔진은 혁신과 생산성 향상뿐이고, 그것을 이루는 주체는 기업일 수밖에 없다. 기업 활동에 활력을 주는 노동 개혁과 규제 혁파, 산업 구조조정, 신(新)산업의 창발(創

)이 수반되지 않으면 소득 주도 성장은 허구다. 땀 흘리지 않고도 과실이 얻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허구로 드러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