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여성 교무(성직자)의 '독신(獨身) 서약'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원불교 최고위 성직자들의 모임인 출가교화단 각단회(角團會)는 최근 회의에서 여성 예비 교무들이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정녀(貞女) 지원서'를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일반인들에게 원불교는 여성 교무들이 주는 이미지가 강하다. 흰 저고리 검정 치마, 쪽 찐 머리의 여성 교무는 어디서든 눈에 띄는 존재다. 이런 복장과 헤어스타일로 근검절약하며 봉사하고 헌신하는 여성 교무들은 개교(開敎) 100년 만에 원불교가 국내 4대 종교의 반열에 오르게 된 원동력 중 하나다.

그런데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바로 '정녀 지원서'다. 원불교 여성 성직자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독신 서약'이었다. '정녀 지원서'는 원불교 내에선 오래된 숙제였다. 남성은 독신 서약이 의무가 아니다. 출가한 후에 스스로 독신과 혼인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10여년 전부터 여성 교무들 사이에선 "정녀 지원서는 단순히 결혼 여부만이 아니라 선택권 자체를 제한함으로써 자존감을 해치는 불평등 서약"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교리로 따져봐도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대종사는 당시로서는 선진적으로 남녀평등을 강조했다. 이런 정신에 비춰보면 하위법이 상위법과 배치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100년간 굳어져온 관습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번에 각단회가 '정녀 지원서 폐지'에 뜻을 모은 것은 시대 변화 때문.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원불교 역시 성직 희망자가 줄고 있는 가운데 '정녀 지원서'가 남녀를 차별하는 종교라는 이미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던 것. 성직을 희망하는 여성들에게 '진입 장벽'으로 여겨진다는 비판이었다. 각단회 회의에서는 '단순히 서류 하나 받고 안 받는 문제가 아니다'는 신중론도 나왔지만 "일단 정녀 지원서 폐지를 선언적으로 공표하자" "신자와 성직자들의 동요가 예상되지만 해결책을 찾으면 된다"는 의견이 대세였다고 한다.

각단회는 의결권이 있는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이 합의가 당장 실행되는 것은 아니다. 원불교 행정을 총괄하는 교정원에서 결정하거나 최고 의결기구인 수위단회(首位團會)를 통과해야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