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이 발행하는 국내 유일의 바둑 월간지 '바둑'이 창간 반세기를 맞는다. 1967년 8월 첫 호를 낸 뒤 지난달 통권 600호를 거쳐 다음 주 창간 50주년 기념호를 발간하게 된 것. 한국 잡지사(史)를 돌아봐도 단 한 번 결호(缺號)나 합병호 없이 반세기를 이어온 유가(有價) 전문지는 손꼽을 정도로 적다.

몇 종의 바둑 월간지가 출몰하다 재정난과 과당경쟁으로 모두 문을 닫을 무렵 '바둑'은 '기계(棋界)'란 제호로 첫선을 보였다(제호는 2년 뒤인 69년 8월호부터 '바둑'으로 바뀌었다). 창간호는 초판 5000부가 단숨에 매진되는 등 기세 좋게 출발했다. 창간호 가격은 100원. 현재 정가 7800원에 비하면 50년간 77배가 올랐다.

1967년 8월 발간된 창간호(왼쪽)와 50주년 기념호인 2017년 8월호(오른쪽)표지.

월간 '바둑'은 세계를 석권한 영광스러운 한국 바둑 역사의 실록(實錄)이었다. 조치훈의 일본 명인 획득(80년 12월호)과 조훈현의 제1회 잉씨배 우승(89년 10월호) 등 두 사건은 특히 한국 바둑계와 잡지 양쪽 모두에 절정기였다. 두 번 모두 4만부 가까이를 찍고도 매진된 것. 당시 잡지 판 돈으로 한국기원 전체 직원 월급을 주었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표지는 초기 김상옥·천경자·김기창 화백 등 대가들의 동양화를 거쳐 류귀화씨의 닥종이 인형 사진, 일러스트, 바둑이 있는 풍경 등으로 변화를 거듭했지만 프로 기사들의 등장 빈도가 가장 높았다. 초창기 김인, 70~80년대 조훈현·서봉수를 거쳐 90년대 중반부터는 이창호의 표지 독점 시대(?)가 열렸다. 새 천년 들어선 이세돌·최철한·박영훈 등이, 2010년대에 접어들자 박정환·김지석·등이 표지를 장식했다.

위험 대결, 탐험 대결, 선풍 대결, 프로·아마 대항전 등 올드 팬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인기 기획물이 많았다. 창간 때부터 계속돼 온 '단급 인정 시험'은 일반 팬들이 공식 바둑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최초의 창구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08년 우수 잡지로, 2009·2013·2015년엔 우수 콘텐츠 잡지로 선정하는 등 '바둑'은 울타리 밖의 평가도 좋았다.

반세기 동안 총 20명의 편집장이 거쳐 갔다. 초대 정재영(작고)에 이어 수필가 최백산, 바둑 서지학자 안영이가 뒤를 이었다. 심재택·성유보·양동환·윤응식 등 유명 문인·언론인들도 포함됐다. 프로 기사로는 4대 편집장을 지낸 심종식 6단(은퇴)이 유일했다.

구기호 현 편집장은 "실시간으로 기보와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다. 월간지만이 할 수 있는 심층 보도와 특화 관전기, 독자와 함께하는 참여 코너를 늘려갈 생각"이라고 밝히고 있다. 창간 무렵과 달리 바둑을 담는 매체가 다양화하면서 잡지 제작 방향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는 것.

바둑 자체의 위상 저하 등 제작 여건이 악화된 것도 넘어야 할 과제다. 역대 최장수(10년)로 15대 편집장을 지낸 정용진씨(사이버오로 상무)는 "편집 팀이 잡지 제작에만 전념하지 못하고 광고와 판매 등에까지 매달려야 하는 요즘 실정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50년 기념호엔 '바둑 전문가 50명에게 묻는다' '남녀 기사 5명 릴레이 50문 50답' 등의 특집이 실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