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제2바이올린 부수석

7월 중순, 런던은 세계적인 클래식 페스티벌 '프롬스(The Proms)'의 계절이다. 9월까지 날마다 연주가 있다. 유명 연주자, 인기 있는 곡이라면 일찌감치 표가 다 팔리지만 당일에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입석을 살 수 있다. 점심 먹고 나서 "오늘 프롬스 갈까?" 해도 늦지 않다.

한 사람당 한 장밖에 살 수 없으니 일찍 만나서 줄을 선다. 기다리는 동안 차분하게 책도 읽고, 앞뒤 사람들과 곧잘 말도 섞는다. 날마다 간이 의자를 들고 와 줄 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광객인데 프롬스가 재미있다는 말을 듣고 처음 와봤다는 사람도 있다.

십몇만원에 해당하는 거금을 들여 로열 앨버트 홀의 제일 좋은 자리를 산 적도 있지만, 달랑 6파운드(9000원)가 채 안 되는 돈을 내고 입석표 한 장을 받아들 때는 돈은 적게, 시간은 많이 투자했다는 묘한 성취감도 느낀다. 맨꼭대기 층에 올라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오케스트라를 내려다보다가 다리가 아프면 바닥에 눕기도 한다. 차가운 바닥에 닿은 등뼈 밑으로 음악의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자는지 음악을 듣는지 모르게 벽에 기대서 눈을 감은 노인, 친구들과 여럿이 와서 손가락으로 무대를 가리키는 고등학생도 보인다.

이렇듯 다양한 사람이 연주회에 온다는 게 새삼스럽다. 턱시도를 차려 입은 맨앞줄 사람도,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도 음악을 들으러 온 건 똑같다. 악보를 넘겨가며 열심히 듣는 사람도, 날짜가 지난 주말판 신문을 읽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빽빽이 들어찬 아래층 무대 앞에서 까치발을 하고 연주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소년, 도시락을 싸와서 돗자리까지 펼치고 와인 한 잔 하는 가족도 있다. 그 많은 사람이 와글와글 떠들다가 연주가 시작되면 한결같이 조용해지는 걸 보면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다. 공연장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규칙 같은 건 이곳에 없다. 모두들 음악을 들으려고 자발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뿐이다. 음악은 자유다. 정신적 자유, 마음의 여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