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문화부 차장

그러니까, 이 글은 '아날로그의 반격'에 관한 어떤 기록이다. 정보 과잉 세상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선택과 여과라는 명제 말이다.

최근 조선일보 books를 금요일자로 옮기고 지면을 확대했다. 몇몇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중 '나의 사적인 서가'가 있다. 대외 공개용 리스트 말고, 내밀한 독서 고백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첫 주자는 소설가 김훈. 글 쓰는 작가인 만큼 자신의 문장으로 답변하게 하고 싶었다. 그는 구석기 시대의 작가. 육필(肉筆)이다. 팩스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그나마 기적이랄까.

팩스로 질문지를 보냈더니 200자 원고지 12장에 쓴 답변을 보내왔다. 만 하루 뒤의 일이다. 신문사 팩스가 오랜만에 특유의 기계음을 발산한다. 삐~ 비~ 삐비빅. 빛의 속도 이메일과 달리 열두 장 팩스가 도착하는 데 1분 넘게 걸린다. 그 1분을 지루해하다 작가의 필체를 들여다보며 생각에 빠진다.

'○○의 창공을 날아가는 꿈의 힘으로 악세(惡世)의 뻘밭을 허우적거리며 기어간다.' 시인 김수영을 언급했던 이 문장에서 나는 ○○을 사유(思惟)라고 읽었다. 사유의 창공이라. 멋지구나, 시인이여. 교열을 위해 팩스를 다시 보냈을 때 작가는 '사유'를 '자유'로 고쳐서 한 번 더 보내왔다.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던가?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사유의 창공과 자유의 창공 사이에서 기자의 마음은 맑고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녔으니까. 사례 하나 더. '주저앉은 그가 놀라운 ○○○으로 자신의 내면을 고백하는 대목에서, 나는 낄낄 웃는다.'

○○○을 기자는 '적개심'으로 읽었다. 하지만 작가의 교열 원고에서 그 단어는 '정직성'으로 수정되어 있었다. 적개심으로 고백하는 내면과 정직성으로 고백하는 내면 사이에는 얼마나 아득한 격차가 있는 것일까. 분노와 윤리의 낙차 사이에서 사유는 한 번 더 창공을 날아오른다.

당신 책장에 있다면 사람들이 놀랄 책을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경호 사격술'이었다. 작가는 이렇게 썼다.

'경호 사격술은 권총 사격술에 관한 책이고, 사격은 총알로 표적을 맞히는 기술. 군대에서 사격을 배울 때, 이것이 언어○○의 세계라는 걸 알았다.'

기자는 ○○을 도달이라고 읽었다.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구태여 인용하지 않더라도 하나의 사물을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고, 하나여야 한다. 표적에 적중하는 단어. 권총 사격술에서 과녁에 적중하는 언어를 떠올리는 소설가는 얼마나 대단한가. 하지만 작가는 밑줄을 긋고 '언어도단(道斷)의 세계'라고 고쳤다. 말 길이 끊어졌다니. 언어도단과 언어 도달 사이에서 말문이 막혀 한참 웃었다.

이메일 답변이었다면 금방 끝났을 일이 이틀이나 걸렸지만, 후회는커녕. 육필 원고가 준 예외적 사유 연습에 감사할 따름이다. 더운 여름, 당신에게도 이 아날로그의 반격이 함께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