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박현진씨는 “트로트는 된장, 막걸리 같은 매력이 있다”고 했다. “힘들거나 울적할 때, 고향 생각날 때 쭉 뽑으면 힘이 나죠. 기쁠 때 부르면 더 좋고요. 그런 곡을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박현진(67)씨는 '네박자' 인생을 산다. 트로트 유행가 작곡가인 그가 손대면 톡 하고 히트곡이 됐다. 봉선화 연정, 사랑에 푹 빠졌나 봐(이상 현철), 네박자(송대관), 신토불이, 99.9(이상 배일호), 무조건, 황진이(이상 박상철) 등이 그가 작곡한 노래다.

그는 저작권료로 많은 돈을 벌지만, 한 달에 한 번 KBS 1TV '전국노래자랑'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전국을 돌며 사랑, 이별, 눈물의 노래를 듣고 실로폰으로 '딩동댕' 또는 '땡'을 울린다. 최근 서울 수서동 작업실에서 만난 박씨는 "전국노래자랑에 갈 때마다 사명감 같은 걸 느낀다"고 했다. "참여한 지 20년쯤 됐나 봐요. 지상파 방송에서 트로트 가수가 신곡을 부를 수 있는 유일한 프로그램입니다. 트로트의 젖줄이죠. 저뿐만 아니라 제작진, 초대가수 모두 십시일반으로 프로그램을 잘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는 경북 청송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 부산으로 이사갔다. 중2 때부터 가수 꿈을 키웠다. "부산 서면 달동네에 살았죠. 중학생 때부터 학업은 뒷전이고 낮에는 목걸이 공장, 밤에는 재봉틀 공장 다니며 돈을 벌어야 했어요. 그때 참 고달팠지만 손가락만 한 라디오로 음악 들을 때 황홀했어요. 중2 때 중고 기타를 구해서 독학으로 배우는데, 머리에서 멜로디하고 가사가 막 나오는 거예요. 음악이 운명이라 생각했죠."

음악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첫 달 레슨비만 겨우 구해 등록했다"며 "계속 다니고 싶어서 매일 학원 구석구석을 청소하니까 더는 돈 내라는 소리를 안 했다"고 했다. 그는 고2 때 가수 꿈을 접었다. "키가 1m59㎝에서 더는 안 컸고, 노래 잘해도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음악이 정말 좋아서, 작곡가가 되기로 꿈을 바꿨다고 한다.

박씨는 군악대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서울로 와서 나이트클럽 손님 노래 반주를 하는 밴드마스터로 일했다. 그래도 틈날 때마다 곡을 써서 신인가수에게 주고 방송국 다니며 홍보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가수 현철을 만났다. "현철씨가 부산 음악학원 원장으로 있을 때 형, 동생 하며 지냈었거든요. 어느 날 라디오 듣는데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나오는 거예요. 한 번에 현철인 걸 알았죠. 그 음반 낸 아세아레코드사에 전화했더니 현철씨가 받더라고요."

현철에게 처음 준 곡이 '봉선화 연정'이었다. 그는 "노래 나오고 처음에는 반응이 없었는데 두 달 지나니까 10대들까지 다 따라 부르더라"며 "이때부터 쓰는 곡마다 히트였다"고 했다. '신토불이'는 1993년 나온 곡이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으로 농산물 시장 개방이 결정됐을 때였다. 그는 "고속도로에 '신토불이' 플래카드가 쫙 붙어 있었는데 이거다 싶었다"고 했다. 송대관이 부른 '네박자'는 원래 제목이 '뽕짝'이었다고 한다. "가사도 '사랑도 뽕짝 이별도 뽕짝 눈물도 뽕짝'이었어요. 방송국에 갔더니 PD가 한 번밖에 못 틀겠대요. 뽕짝이란 가사가 저속하대요. 이걸 송대관씨가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로 고치고 제목도 바꿨죠."

박씨 두 아들은 아버지의 길을 반반씩 걷고 있다. 첫째(박정욱)는 K팝 작곡가, 둘째(박구윤)는 트로트 가수다. 박구윤이 부른 노래 '뿐이고'를 아버지 박씨가 작곡했다. 박씨는 "둘째는 트로트 가수 안 시키려고 했는데 노래를 참 잘하고, 저와 달리 키가 1m70㎝ 넘어서 승낙했다"고 했다.

그는 "트로트를 다른 음악보다 한 수 낮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 사람의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건 역시 트로트"라고 했다. 박씨는 이어 자신의 히트곡을 메들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무조건)~ 내려 보는 사람도 위를 보는 사람도 어차피 쿵짝이라네(네박자)~ 힘든 날은 두 어깨를 기대고 가고 좋은 날은 마주 보고 가고(뿐이고) 그런 노래는 트로트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