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나오지 않겠다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21)씨가 12일 돌연 재판에 출석해 증언했다. 재판장인 김진동 부장판사도 "30분 전까지도 몰랐다"고 할 만큼, 예상치 못한 출석이었다.

정씨는 오전 10시쯤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 나타났다. 김 부장판사는 "정씨가 갑자기 증인으로 나와 혼란을 준 점 (재판 당사자들이) 양해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정씨는 당초 변호인을 통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서 증언하기 어렵다'는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

정씨는 삼성의 '승마 지원' 문제에 관해 증언했다. 특검은 삼성이 승마선수인 정씨를 위해 수십억원대 명마(名馬)를 사주었고,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로 건넨 뇌물이라며 이 부회장 등을 재판에 넘겼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왼쪽)씨가 12일 오전 10시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증언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당초 재판에 나오지 않겠다고 했던 정씨는 돌연 입장을 바꿔 4시간 동안 증언했다. 이 부회장은 재판 내내 정씨를 응시했다.

[이재용 재판에 전격 출석한 정유라…]

정씨는 2015년 8월부터 독일에 체류하면서 삼성이 산 말들을 탔다. 정씨는 "2020 도쿄 올림픽 준비와 관련해 승마선수 육성 차원에서 지원한 걸로 알았다"면서도 "어머니가 (삼성이 사준 말에 대해) '네 것처럼 타면 돼'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또 "어머니에게 '왜 삼성이 나만 지원하느냐'고 묻자 '그냥 조용히 해. 왜 자꾸 물어봐'라며 화를 냈다"고도 했다.

정씨 측은 2015년 독일에서 타던 말 '살시도'의 이름을 '살바토르'로 바꿨다. 특검은 당시 국제승마협회 홈페이지에 살시도가 삼성 소유로 표기돼 있어 이러한 소유 관계를 감추기 위해 이른바 '말 세탁'을 한 것이라고 했다. 정씨는 이와 관련해 "어머니에게 왜 말 이름을 바꿔야 하느냐고 묻자, 어머니가 '삼성에서 너만 지원해준 게 알려지면 시끄러워진다. 삼성에서 시킨 대로 해야 하니까 토 달지 말고 하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특검은 정씨가 기존에 타던 말 두 마리(비타나V와 살시도)를 지난해 9월 다른 말(블라디미르와 스타샤)로 교체한 것도 언론에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보도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입장이다. 정씨는 "(승마코치인) 캄플라데로부터 '어머니와 삼성전자 박상진 전 사장, 황성수 전 전무가 말 교체 직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만났다'는 말을 들었다"며 "어머니는 삼성이 먼저 말을 바꾸라고 제안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정씨의 증언은 어머니 최순실씨는 물론 이 부회장, 박 전 대통령에게도 불리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이른바 '승마 지원'의 수혜를 본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정씨가 이들과 사실상 배치되는 진술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최씨와 삼성 측은 특검 조사와 재판 등에서 '승마협회 차원에서 정당한 지원을 주고받은 것'이라고 해왔다. 최씨는 지난 1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때 "삼성 같은 큰 회사가 어떻게 딸 혼자만을 위해 (지원을) 한다는 거냐"고 했다. 삼성 측은 이른바 '말 세탁' 의혹은 최씨 모녀가 삼성과 상의도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한 일이고 삼성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이날 정씨의 증언에 대해 "정씨는 다른 사람에게 들은 얘기를 하는 것뿐"이라며 "정씨는 실제 (최씨와 삼성 관계자들의) 코펜하겐 미팅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알 수가 없다"고 반박했다.

정씨는 이날 "유모에게 아들(2)을 오후 2시까지만 맡기기로 했다"면서 점심시간 없이 4시간 동안 증언을 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정씨의 이경재 변호사는 "정씨가 상의 없이 새벽 5시 전에 혼자 집을 나서 빌딩(집) 앞에 대기 중이던 승합차에 탄 뒤 종적을 감췄다"며 "특검 측 압박과 회유로 인해 정씨의 진술이 오염됐다는 의심이 있다"고 했다. 반면 특검은 "증인 출석을 강요한 적 없다. 정씨가 이른 아침에 연락을 해 출석하겠다면서 (법원까지) 이동하는 것을 지원해달라고 해 도와준 것뿐"이라고 했다. 정씨는 삼성 변호인이 왜 출석했느냐고 묻자 "여기 나오는데 여러 만류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검사님이 (증인으로) 신청했고 판사님이 받아줬으니 나온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