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고민에 빠졌다. 오디오 두 조(組) 가운데 하나를 없애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집에서 예술의 전당 음장감(音場感)을 실현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공간이 너무 작으면 아무리 좋은 오디오도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새로 이사하게 될 집 작은 방은 오디오를 설치하기에 너무 좁다. 이른바 오디오쟁이들은 이럴 때 아무렇지 않게 오디오를 팔고 사정이 바뀌면 또 사들이는데, 그런 '바꿈질'에 익숙지 않은 처지에서 정든 기계를 팔아치우는 게 쉽지 않다.

결혼하면서 오디오에 입문하던 때가 생각났다. 스피커와 앰프, CD 플레이어로 구성된 단출한 시스템으로 시작했다. 앰프만 신품을 샀고 스피커와 CD플레이어는 중고를 구했다. 공교롭게 둘 다 서울 불광동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구했다.

스피커를 사러 간 저녁, 자동차가 진입할 수 없는 좁은 골목길을 올라 알루미늄 새시로 된 현관문을 두들겼더니 주인이 나왔다. 그 집은 부엌 겸 거실(이라고 하기엔 너무 좁았다)과 방 한 칸, 화장실로 이뤄진 집이었다. 저녁 9시쯤밖에 되지 않았는데 부엌 겸 거실에 젊은 여자와 어린아이가 자고 있었다. 자칫 그들을 밟을세라 살금살금 방에 들어갔는데, 두 평쯤 되는 방에 수천만원은 돼 보이는 오디오 두 조가 있었다. 거기서 스피커 두 짝을 어깨에 메고 누워 있는 엄마와 아이를 살금살금 피해 들고 나왔었다.

CD플레이어를 살 때는 거실을 공유하는 다세대 주택에 갔다. 널찍한 방 한 칸을 쓰는 그 오디오 주인 역시 책상도 없고 책도 없는 집에 오디오만 두 세트를 갖고 있었다. 방 한쪽에 당시 유행하던 댄스그룹 음반 몇 장이 널브러져 있었다. 오디오에 미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오디오쟁이들은 오디오를 판다고 하지 않고 시집 보낸다고 한다. 베토벤부터 핑크 플로이드까지 두루 버텨낸 내 오디오가 시집갈 때 나를 원망할까 두렵다. 금지옥엽 데려올 땐 언제고, 헐값에 마누라를 팔아넘기냐! 소리치는 것 같다. 오디오야, 뽕짝을 틀어도 꿋꿋이 버티렴. 내가 꼭 데리러 갈게. 으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