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개혁을 부르짖으며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누구나 성서를 읽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지만 그 효과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사람들이 책을 읽게 되면서 자신의 눈이 나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종이의 생산과 소비도 늘었지만 정말 호황을 누린 건 안경 업체들이었다. 안경 산업이 발달하자 이게 또 렌즈의 발달로 이어진다. 렌즈의 개발은 자연스럽게 현미경의 발명으로 옮아간다. 현미경이 발달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세균의 존재를 알게 되고 질병의 원인이 이 세균에 의한 감염이라는 과학적 성과로 결실을 맺는다. '벌새 효과'다.

벌새는 꽃식물에서 꿀을 얻기 위해 새라는 종의 특성을 무시하고 같은 자리에서 공중에 떠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진화시켰다(조류의 곤충 영역 진출?). 뜬금없는 나비 효과와 달리 인과관계가 명확하다. 스티븐 존슨의 책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는 그런 '벌새스러운' 발명과 발견을 유리, 냉기(冷氣), 소리, 청결, 시간, 빛이라는 여섯 개 영역에서 소개하는 인류 문명 발달사다. 하나같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지만 맛보기로 하나만 소개하자면 이런 게 있다.

헝가리 의사 제멜바이스는 1847년 내과 의사와 외과 의사에게 환자를 진료하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가 세상의 놀림거리가 된다(지금으로 치면 치과 의사는 이를 뽑기 전에 쪼그려 뛰기를 1분간 반복한다, 쯤 되겠다). 그때까지 의료계는 세균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제멜바이스가 그런 제안을 했던 것은 산모에게 치명적인 산욕열을 연구하던 중 특이한 결과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당시 병원에는 두 종류의 분만실이 있었다. 하나는 의사가 배치된 부유한 계급을 위한 분만실이었고 하나는 노동 계층을 위한 분만실로, 여기에는 의사 대신 산파가 있었다. 이론상 사망률은 노동 계층 전용 분만실이 높아야 맞는다. 그런데 실제로는 부유층을 위한 분만실의 산모 사망률이 훨씬 높았다. 두 분만실을 관찰하던 제멜바이스는 의사들이 분만실에 근무하는 틈틈이 연구를 위해 시체실을 오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감염균이 시체에서 산모에게 옮겨졌던 것이다. 물론 현미경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이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었고 그의 주장이 인정된 건 제멜바이스가 죽은 지 무려 반세기가 지나서였다.

인간의 위생 환경이 불과 150년 전 이 지경이었다. 이야기를 이어가자. 감염균의 발견은 어떤 벌새 효과를 가져왔을까. 1908년 의사였던 존 릴은 오염된 식수가 건강을 해치는 치명적인 원인이라 생각하고 미국 뉴저지 급수장에 야밤에 무단으로 염소를 투척한다. 염소는 치명적인 화학물질이지만 그는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적당한 비율로 물과 섞으면 안전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그는 법정에 서야 했지만 수인성 질병의 감소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물이 깨끗해지자 야외에 공공 수영장이 등장했다. 그리고 여성들은 몸매를 드러내기 위해 비키니를 입기 시작했다. 루터의 성경 번역이 비키니로 이어진, 정말이지 아름답고 바람직한 벌새 효과가 아닐 수 없다. 날씨는 덥고 세상은 우리에게 매일같이 짜증 폭탄을 던진다. 읽는 동안, 그리고 읽고 나서 며칠은 선선하고 유쾌하다. 이 책을 안 읽으면 '인생의 손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