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계 미다스 손' '국민 예능' '섭외의 신' '나영석표'…. 나영석(41) PD를 설명하는 수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이 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바로 '금요일의 남자'. 2013년 7월 5일 금요일에 포문을 연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시작으로 '삼시세끼' '윤식당' 등 연타석 홈런을 치며 시청률 사각지대였던 금요일 밤을 가장 뜨거운 예능 격전지로 만들었다. 금요섹션 'friday'가 전국 1만25명에게 '금요일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물은 조사에서도 '나영석' 'tvN 시청' '나 pd'가 적지 않게 언급됐다.

카메라 뒤에 있는 게 편하다는 나영석 PD였지만 막상 카메라 앞에 서니 그 또한 즐기는 듯했다. 나 PD는 “옛날에는 내가 제일 중요했는데 지금 가장 큰 관심사는 후배 PD, 후배 작가들과의 협업”이라며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사람’”이라고 말했다.

'friday'는 창간호를 맞아 우리에게 금요일 밤의 '웃음'을 선사한 나영석 PD를 26일 서울 상암동 CJ E&M사옥에서 만났다. 얼마 전 칸 광고제 발표에 이어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촬영과 새로 들어갈 '삼시세끼 어촌편 4' 준비 때문에 주말도 없다는 그가 어렵게 짬을 냈다. 금요일 밤 가족을 오순도순 TV 앞으로 모이게 한 '예능계 연금술사'라지만 정작 본인은 남들 같은 주말을 누리고 싶은 '회사원'이라며 해사하게 웃는다.

―'금요일의 남자'다.

"예상 외로 내가 하는 많은 일은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웃음). 금요일도 그중 하나다. 내 자랑 같지만 내 장점이 남의 말을 굉장히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전문가가 의견을 내면 설사 거슬리는 말이라도 귀 기울여 듣는다. 예컨대 '알쓸신잡'을 꾸리면서 정재승 교수를 섭외하려는데 너무 바쁜 분이라 스케줄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나는 '다른 분으로 가자'고 했는데 정 교수 섭외를 제안했던 후배 PD가 고집했다. 후배 말을 들었고 믿었다. 후배가 옳았다."

―히트작의 연속이다. 트렌드는 어떻게 잡아내는가.

"모든 건 타이밍이다. 주변에서 한두 사람이 이야기한 게 회의에서도 '터져' 주면, 기운이 무르익었다고 느낀다. '나영석 사단'이란 말을 누가 먼저 꺼낸 건지 모르지만 나만의 판단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총합이 프로그램이 된다. 함께 만드는 프로그램 '단톡방'에 49명이나 있다. 동료이자 트렌드 풍향계다."

‘알쓸신잡’ 촬영장에서 작가 유시민과 함께 있는 나영석 PD.

―2007년 시작한 KBS '1박2일' 이후 10년째 예능 왕좌를 지키고 있다.

"작년부터 올 초까지 굉장히 방황했다. 꾸리는 팀이 셋이나 되니까 이 팀에서 일하다 저 팀 돌보고, 일을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듯했다. 그래도 정말 자랑스러운 건 올해 새로 한 세 작품, '신혼일기' '윤식당' '알쓸신잡'이 옛날부터 함께 일했던 후배들 입봉작(데뷔작)이다. 그들의 작품인 거다. 물론 나의 절묘한 판단과 상황 정리 능력이 당연히 들어갔겠지만(웃음), 대견하고 진짜 기쁘다."

―나영석에게 실패란 건 없어 보인다.

"모르는 말씀. 매일 시청률과 싸운다. '나영석 망가지는구나'라는 소리 듣는 게 두렵다. 이 업계가 그렇다. 피도 눈물도 없는(웃음)."

―희생된 적은 없지 않은가.

"속앓이한 적은 있다. 예능이 천시된다 생각했다. 막말로 우리가 회사에 벌어다 주는 게 얼만데. 드라마는 끝나면 포상 휴가 가더라. '열 몇 편 찍고 저렇게 놀러 가도 되는 거야? 우린 1박2일을 5년째 해도 하루도 제대로 못 쉬는데?' 하며 속으로 투덜댔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엔딩을 하는데, 예능은 영광스러운 시기는 있어도 시청률 낮으면 소리 소문 없이 폐지되는 게 운명이다. 고생했던 출연자, 스태프 서로 민망해서 얼굴도 못 쳐다본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 CJ 와서 시즌제를 만들었다. 명확한 엔딩이 있다. '수고하셨어요' 하고 웃으며 후일담을 나눌 수 있는 게 너무너무 행복하다."

‘신서유기’에 출연하는 강호동과 함께.

―캐릭터를 뽑아내는 데 탁월하다.

"원래 있는 인성을 끌어낼 뿐이다. 사람은 보통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연예인은 그게 목숨줄이니까 훨씬 강할 수밖에 없다. 우리끼리는 '연못에 돌을 던진다'고 표현하는데,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여행 보내는 것처럼 평소와 다른 상황에 놓으면 된다. 그걸 우리는 '캐릭터'라고 부른다. 한국적 작법이기도 하다. 한국인은 사람한테 관심이 많고 저 사람이 착한가 아닌가를 따진다. 그래서 이서진씨 나올 때가 차승원씨보다 시청률이 안 좋은 게 아닐까. 서진이형은 틱틱거리니까(웃음)."

―그렇다면 당신은 좋은 사람,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인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주 일주일 정도 칸에 출장을 다녀왔는데 아내(홈쇼핑 채널 PD)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에게 '아빠 떼놓고 외국 가서 살까' 했더니 '응' 그러더란다. '아빠 보고 싶지 않아?' 물으니 '뭐 어차피 만날 출장 가는데' 했단다. 아직 어리니까 상황 판단을 못 해서 그리 말했다고 생각하고 싶다(웃음)."

'예능계 연금술사'라지만 정작 나 PD 본인은 남들 같은 주말을 누리고 싶은 '회사원'이라며 해사하게 웃는다.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충족해왔다. 당신의 판타지는 뭔가.

"쉬는 것?(웃음) 최근 가장 행복했을 때가 프로그램 중간 펑크로 4~5시간이 생겨 홍대에 있는 만화방에 갔을 때다. 아무래도 난 '회사원'이니 회사 필요에 맞게 움직여야 하고 공장처럼 프로그램을 찍어내야 한다. 내 판타지는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라면?

"옛날부터 요리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다. 말하자면 '오늘의 요리' 같은 것. 캐릭터나 설정 같은 모든 게 소거된 다큐멘터리 스타일이다. 사람들이 감정의 질척거림조차 귀찮아하는 시기가 올 거라 생각한다. 사실 우리 프로그램은 굉장히 질척거리는 프로다(웃음). 캐릭터가 있고 투닥거리다가 그럼에도 동료를 사랑하고…. 앞으론 좀 더 건조하면서도 단순하고, '쿨'한 방식으로 변할 것 같다. 내 욕망이기도 하고 앞으로 그런 식으로 트렌드가 변할 거란 생각도 든다."

―2012년 낸 에세이집을 보면 '40세가 되면 콧수염을 기르고 술집을 열겠다'고 했다. 당신의 50대는 어떨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을 찍고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매여 있는 게 너무 많다. 날 고용해준 회사는 이익을 얻어야 하고, 믿고 따르는 후배에게 길을 열어줘야 하고, 참여해준 연예인들에겐 광고든 다른 작품 캐스팅이든 이익이 있어야 한다. 어느 순간에는 이런 걸 다 신경 써야 하는 게 좀 힘들 때도 있다. 50대가 되면 좀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올해가 나한테 굉장히 중요하다. 후배들 지분(역할)이 점점 커지고 나이가 들면서 내 판단력과 감(感)도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날 원하는 시청자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는 소소한 시청자들을 위해 소소한 내 프로그램을 소소한 내 스태프들과 함께 찍고 싶은 게 꿈이다."

나의 금요일

애석하게 내 사전에 ‘불금’은 없다. 금요일 방송되는 내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고 싶지만, 촬영이나 출장 스케줄 때문에 못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들처럼 주말은 쉬려고 하는데 요즘 ‘알쓸신잡’ 촬영 때문에 그것도 힘들다. 출연자 모두 바쁜 분들이라 주말에야 겨우 스케줄 맞출 수 있다.

‘평범한’ 주말에는 초등학교 3학년 딸과 ‘빡세게’ 논다. 딸이 원하는 대로 다 해준다. 놀이터 가고 카드게임 하는 정도. 허리 부러져라 놀면 딸아이가 한마디 한다. “역시 아빠가 좋은 거 같아.” 잠시 ‘떠났던’ 딸아이의 사랑이 돌아오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