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books 팀장

멕 라이언이 주연했던 영화 '유브 갓 메일'(1998) 기억하십니까.

1990년대 뉴욕 맨해튼 근처의 동네 서점이 소재였죠. 톰 행크스가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대형 체인 서점을 여는 바람에 위기에 처한 독립 서점 이야기였습니다. 실제로 동네 서점 엔디콧 북스는 대형 서점 반스 앤드 노블 지점이 생기면서 20년 전에 문을 닫았죠. 그런데 이번 출장길에 뉴욕에 들러보니 바로 그 자리에 동네 서점이 다시 섰더군요.

2014년 가을에 문 열었다는 이 매혹적인 독립 서점의 이름은 북컬처(Bookculture). 웬 역주행일까요. 클릭 한 번으로 편리하게 책을 사는 아마존도 아니고, 가격으로 승부하는 대형 체인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차이는 속도나 가격이 아니라 사람의 큐레이션에 있었습니다. 전문가 직원들이 직접 읽고 손으로 쓴 열정적 메모가 선별된 책마다 붙어 있더군요.

오늘부터 books를 금요일자에 싣습니다. 2015년 2월 books 팀장을 맡으면서 '리스트'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건 선별과 여과의 긴 역사가 아니었을까요. 클릭 한 번이면 책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작가와 어떤 책을 추천하느냐 여부라고 생각합니다.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혜안처럼, 정보의 진위나 가치를 분별할 자산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정보의 하수구가 되기 십상이죠.

개편 첫 호 조선일보 books의 작가 리스트는, 프린스턴 대학 줌파 라히리 교수와 소설가 김훈, 그리고 영화평론가 이동진입니다. 왜 훨씬 더 많은 독자를 지닌 영어를 버리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는가, 죄책감을 느끼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몰래 읽는 책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름만 들으면 사지 않을 수 없는 논픽션 작가의 리스트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번 주 우리가 신간으로 선택한 책은 '아날로그의 반격', 종이 신문 북섹션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삶은 유한하지만, 리스트는 무한한 법. 우리의 리스트를 기대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