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품격

이용재 지음|반비|532쪽|1만8000원

"현재의 한식에 품격이란 없다. 맛이 없는 음식은 품격도 떨어진다."

건축가 출신 번역가이자 음식 평론가인 이용재(42)가 쓴 '한식의 품격'은 불편하다. 몸에 좋은 발효 식품 김치. 세계 누구나 좋아하는 잡채·불고기. 미식가라면 무릇 즐겨 먹어야 할 평양냉면.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음식들이 하나같이 문제가 있고, 한발 더 나아가 맛이 없다고 주장한다. 건축가 출신다운 면밀함으로 한식의 설계도를 분석한 뒤 건축 자재부터 공법까지 세세하게 지적한다. '맛만 좋은데 무슨 소리야'라고 첫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어도 끝에는 갸우뚱거림과 끄덕임 사이에서 책을 덮게 한다.

여름이 찾아왔으니 최근 '미식가의 미식'으로 굳게 자리 잡은 평양냉면부터. 모르는 사람은 '밍밍하다'고 혹평하는 그 음식이다. 섬세한 감칠맛이 맴도는 고깃국물, 돼지고기와 쇠고기 고명, 바로 뽑아낸 메밀 면, 반으로 잘린 삶은 계란이 한 그릇에 담겼다. '슴슴한 이북의 맛'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대부분 평양냉면은 우리가 믿는 것처럼 슴슴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투명한 고기 국물로는 감칠맛이 부족하니 조미료가 파고든다. 화학조미료와 사카린 등의 감미료다. 두 조미료가 가세해 흔히 '닝닝함'이라 표현하는 평양냉면 국물 특유의 맛이 완성된다."

놋그릇에 담긴 평양냉면(위)과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평양냉면(아래 왼쪽). 내용물이 같다면 어느 쪽이 더 맛있을까? 저자는 평양냉면을 더 맛있게 즐길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가 가장 한국적인 음식으로 꼽은 것은 ‘인스턴트 라면’(아래 오른쪽)이었다.

더 나아가 그는 이 음식이 한식의 무신경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도 지적한다. 식당에 따라서 ①냉면을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아내 국물의 맛을 가리고, ②냉면 위에 올린 반쪽짜리 삶은 계란 속 노른자가 고기 국물을 탁하게 만드는가 하면, ③메밀 면과 국물 맛을 압도하는 참기름으로 버무린 겉절이를 반찬으로 내놓기도 한다. 공들여 만들어낸 국물 맛을 망가트리며 먹는데, 식당도 소비자도 그게 최고라고 칭송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그는 평양냉면 마니아다. 미국 유학 시절 직접 양지머리로 국물도 내봤다. 전문점처럼 맛을 낼 도리가 없자 한국에 올 때마다 평양냉면을 먹고 갔다고, 그는 고백한다. 합성조미료와 감미료가 들어가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아니다. 평양냉면이 '심심한 맛'이라고 굳게 믿다 보니 음식 자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그는 새로운 조리법을 도입할 기회가 '전통'이라는 이유로 가로막히고, '서민음식'이라는 가격적 굴레가 더 뛰어난 맛을 낼 가능성을 막는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조미료의 핵심인 소금이 한식에서는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유명 고깃집의 '저염김치'가 예로 등장한다. "소금 간이 부족한 김치를 억지로 발효시킨 맛. 심심하거나 삼삼하지 않고 그냥 싱겁다. 다른 맛이 살아나지 않을 정도로 소금을 안 쓴 탓이다." 0과 10의 사이에는 여러 세부 단계가 존재하는데, 굳이 10이 무서워 0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다.

소금은 무조건 적게 써야 하고, 화학조미료는 나쁘다고? 그 편견이 단맛(그나마도 정직한 단맛의 설탕 대신 뒷맛이 나쁜 사카린과 아스파탐 같은 합성 감미료를 쓴다)과 매운맛이 채운다. 짠맛,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이라는 5가지 맛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다. 한국을 세계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음식은 철저한 계산 끝에 만들어진 '인스턴트 라면'인 셈이다.

저자는 한식은 어머니의 '손맛'과 '전통'만 지키면 되는 음식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만능 양념장'으로 모든 재료를 비슷한 맛으로 만들고, 익숙한 습관이라는 이유로 비싼 돈 주고 식당에서 직접 고기를 '셀프서비스'로 구워 먹는 현실. 입이 델 정도로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면서 섬세한 맛을 느낄 기회를 잃는 것도 말이다. 익숙한 우리 식문화지만 그게 최선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마찬가지로 김치는 서양 치즈처럼 발효 전문가가 과학적으로 맛을 낼 때 '손맛'에 의지하는 것보다 나아질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책 뒷부분에 그는 한식 발전을 위한 20가지 방법을 제언한다. '전통과 습관의 분리' '양념으로 재료 맛을 가리지 말 것' '단맛을 낼 때는 설탕 쓰기' '나물의 쓴맛 활용하기' '반찬 가짓수 줄이기' 등. 음식을 '전통'이란 이름으로 신화화하지 말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서울대 공대 교수들이 공저한 '축적의 시간'을 언급한다. 우리나라는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음식 문화가 자리 잡을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제부터라도 축적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라는 기치 아래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지도 내년이면 30주년이다. 피자와 햄버거를 넘어 중국의 양꼬치, 베트남 쌀국수가 동네 상권으로 파고들었는데, 한식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