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인생의 전기(轉機)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겐 1975년 사시 합격이 그랬다. 그해 고시계 7월호에 합격기를 직접 썼다. '고교 졸업 후 마을 산기슭에 토담집 짓고 공부했다… 법률 서적 살 돈이 없어 공사장에서 막노동하다 이빨 3개가 부러졌다.' 그랬으니 합격 소식 들은 날 얼마나 기뻤을까. 부인 권양숙 여사는 남편 무릎에 얼굴 파묻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둘이 연애결혼해 막 2년이 지났을 때였다. 권 여사는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생 바꿀 기회로 택한 것도 사시였다. 1978년 제대했지만 학생운동하다 구속됐던 전력 탓에 복학도 취직도 되지 않을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그때 '늦게나마 잘되는 모습 보여 드리고 싶어 사시 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전남 해남 대흥사로 들어갔다. 복학한 뒤 1980년 시위에 나섰다 체포돼 경찰서 유치장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경찰서장은 면회 온 학생처장과 법대 동창회장을 유치장 안으로 들여보내 조촐한 소주 파티를 열게 해줬다. 그때 사시 합격자는 그런 대우를 받았다.

▶사시는 그야말로 용이 되는 문(登龍門) 같았다. 시골에서 사시 합격자가 나오면 돼지 잡아 잔치했고, 지역 기관장들은 부모에게 인사를 왔다. 사법연수원 들어가면 '마담뚜'들의 타깃이 됐다. 집안이 가난한 이들이 특히 공략 대상이었다. 마담뚜들이 '개룡'(개천에서 난 용)들에게 신부 지참금으로 빌딩 한 채 또는 현금 10억원을 제의했다는 소문이 돌 때도 있었다. 2001년 사시 합격자 '1000명 시대'가 열리면서 인기가 좀 시들해졌지만 그래도 사시 합격의 무게는 여전하다.

▶여러 화제 인물도 낳았다. 1996년 막노동하며 서울대 인문계 수석으로 들어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란 책을 펴낸 장승수씨는 2003년 사시에 합격했다. 사람들은 그를 '대한민국 마지막 개룡'이라고 했다. 2008년엔 음성으로 변환한 법전으로 공부한 최영씨가 시각장애인으론 처음 합격했다. 3년 전엔 수퍼 모델 출신 이진영씨가 합격했다.

▶사시는 성공의 사다리 역할도 했지만 '고시 낭인'을 양산하는 문제도 낳았다. 결국 2007년 로스쿨 도입이 결정돼 올해를 끝으로 폐지된다. 21일 마지막 사시 2차 시험이 연세대에서 치러졌다. 1950년 고등고시 사법과를 출발로 보면 67년 만이다. 어제 한 신문엔 시험장 앞에 쪼그려 앉아 마흔두 살 아들의 시험장을 바라보는 칠순 어머니 사진이 실렸다. 아들은 어머니 식당 일 도우며 어렵게 공부했다고 한다. 그가 마지막 사다리를 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