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해온 것은 모두 그가 처음으로 했던 것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경외한 '그'는 헝가리 출신 사진작가 앙드레 케르테츠(Kertesz·1894~1985)다. 일반엔 낯설지만 만 레이, 브레송 등과 함께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가로 많은 걸작을 남겼다.

케르테츠 특유의 유머와 실험성이 돋보이는 1926년작‘풍자극 무용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한 지 꼭 20년 만에 그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성곡미술관에서 9월 3일까지 열리는 '앙드레 케르테츠' 전시다. 부다페스트, 파리를 거쳐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펼친 케르테츠는 죽기 1년 전 원판 필름 10만점과 컬러 슬라이드 1만5000점을 작가로서 최고 전성기를 보낸 프랑스에 기증했다. 그중 원판으로 인화한 모던프린트 189점이 이번 전시에 나왔다.

대표작들은 파리 시기에 속해 있지만 열여덟 살,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쥐고 '일기 쓰듯' 사진을 찍었던 헝가리 시절 초기 작품에 눈길 주는 관람객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양봉가가 되고 싶었던 청년 케르테츠는 전원에서 농부들과 벌을 치고 집시들과 춤추면서 매일같이 사진을 찍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때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치열한 전장(戰場)이 아니라 행군하는 병사들의 평범한 하루, 사소한 기쁨에 앵글을 맞췄다.

가슴에 총상을 입어 요양소에 머물 때 찍은 '수영하는 사람'(1917)은 케르테츠의 첫 실험작이다. 물결과 빛의 반사로 몸은 길어 보이고 머리는 없는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킨 이 사진은 파리 시절 그의 문제작이 되는 '왜곡' 시리즈의 전조가 된다.

뉴욕 시절 절망을 담은‘우울한 튤립’(1939년).

파리로 간 청년 케르테츠는 닥치는 대로 실험하고 도전했다. 뉴스를 기록하는 포토저널리즘이 대세였으나 그는 일상을 해석하는 르포르타주에 심취했다. '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1926) '포크'(1928) '샹젤리제'(1929) 등 사물을 이용한 전위적 작품들이 이 시기 쏟아져 나왔다. 논란이 된 '왜곡' 시리즈는 놀이동산에서 본 '뒤틀린 거울'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한 작업이다. 길게 늘어진 목, 한없이 부풀어 오른 엉덩이 등 여성의 몸을 과장하고 축소하는 식으로 촬영해 이미지의 실체와 허상을 보여줬다. 아쉽게도 이번 전시엔 영상으로만 소개된다.

대중적이지 않아 외면받은 케르테츠의 실험은 그의 나이 일흔이던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면서 제대로 평가받는다.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는 이유로 '라이프'지 등에서 퇴짜맞기 일쑤였지만, 당대의 '얼리어답터'는 91세로 눈 감을 때까지 실험을 계속했다. 뉴욕 시절 절망감을 그대로 담은 '길 잃은 구름' '우울한 튤립'엔 가슴이 뭉클해진다. 9월 3일까지. (02)737-7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