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소셜

장대익 지음ㅣ휴머니스트ㅣ272쪽 | 1만5000원


"완장은 대개 머슴 푼수이거나 기껏 높아 봐야 마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완장은 제가 무슨 하늘 같은 벼슬이나 한 줄 알고 살판이 나서 신이야 넋이야 휘젓고 다니기 버릇했다. 마냥 휘젓고 다니는 데 일단 재미를 붙이고 나면 완장은 대개 뒷전에 숨은 만석꾼의 권세가 제 것이었던 양 얼토당토않은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었다."(윤흥길의 소설 '완장')

소위 '루시퍼 효과'(Lucifer Effect)를 설명하기 위한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장대익(47) 교수의 한국문학 인용이다. 사탄의 이름을 빌려온 '루시퍼 효과'는, 개인의 성격이 고정된 게 아니라 제도가 부여하는 권위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한다는 의미다.

진화학과 과학철학을 전공한 장 교수의 새 책 '울트라 소셜'은 두 가지 차원에서 매력적이다. 하나는 해외 진화학 연구 성과의 최전선을 우리의 문화와 언어로 전달한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공부한 각각의 학문전통을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해서 독자를 설득한다는 점이다. 그 결합은 결국 '어떻게'와 '왜'로 요약된다. 인과론적인 실험 결과와 이 결과가 나온 궁극적 철학적 이유를 병렬시키는 글쓰기. 따라서 그의 과학은 어떤 의미에서 21세기의 인문학이다. 책 제목 '울트라 소셜'(Ultra-Social)은 초사회성(超-社會性)이라는 의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의 장대익적 확대 규정으로, 공감·협력부터 소외·테러까지 상반된 인간 본성은 어떻게 작동하고 왜 발현되는지에 대한 과학적 실험과 인문학적 해석이다.

프로 포커 선수들은 선글라스를 쓰고 게임을 하겠다고 고집 피우곤 한다. 시선을 읽히고 싶지 않아서다. 영장류 92종 중 흰 공막이 있는 건 인간뿐. 우리는 눈으로 상대 마음을 읽는다. 위 사진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선글라스 뒤에 숨은 스미스 요원.

다시 '완장'과 '루시퍼 효과'로 돌아가자. 우선 실험 사례. 미 스탠퍼드대 교수인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심신 건강한 남녀 대학생 24명을 선발해 무작위로 절반을 나눈 후, 각각 교도관과 죄수 역할을 맡겼다. 애초 실험 기간은 2주였지만, 6일 만에 서둘러 끝내야만 했다. 완장 찬 학생 1/3이 죄수에게 모멸감을 주면서 점점 '쾌감'을 느꼈고, 죄수 역시 강압적 행위에 복종하면서 우울증과 신경증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실험 몇몇을 더 인용하면서, 장 교수는 이슬람 국가 IS의 자살 테러범 역시 정신이상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평범한 사람도 특수한 상황에서는 '루시퍼 효과'처럼 특정 권위를 쫓아 끔찍한 행위에 복종하거나 가담할 수 있다는 것. 나치의 대량 학살에 동원된 독일인도 같은 범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울한가. 이번에는 희망적인 '초사회성'을 보자. 키워드는 '협력'이다. 역시 과학적 실험 사례부터. 영장류 92종 중에서 투명한 결막과 흰 공막을 가진 종은 인간밖에 없다는 게 일본 고바야시 히로미 박사팀의 연구 결과다. 오랑우탄이나 침팬지뿐만 아니라, 개나 고양이도 눈의 흰 부분, 즉 공막이 없다. 동물은 동공과 공막의 구별이 흐릿해 눈 전체가 거의 같은 색으로 보인다.

장 교수는 '협력적 눈 가설'을 인용한다. 흰 공막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쉽게 읽을 수 있고, 동시에 자신의 시선도 읽힐 수 있다는 뜻이다. 즉 흰 공막은 진화적 독특성을 지니는 인간 고유의 형질로서, 생리학적 설명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 영화 '매트릭스'에서 선글라스 뒤에 숨은 수많은 스미스씨들의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지 상상할 수 있다면,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연인들의 촉촉한 세상 역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장 교수는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동공을 보라"고 썼다.

이 책이 분류한 초사회성의 개념은 모두 15개. 1부 '초사회성의 탄생'에서는 공감·협력·배려·이해·전수(傳授), 2부 '초사회적 본능'은 편애·신뢰·평판·허구·헌신이다. 2부까지가 상대적으로 긍정적·희망적 구분이었다면, 3부 '초사회성의 그늘'의 소외·서열·동조·테러는 우려에 가깝다. 사회적 고통의 뿌리, 예스맨의 탄생 등을 이 범주에서 설명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4부 '초사회성의 미래'에서는 공존을 꿈꾼다. 인공지능 이후 모두가 우려하는 우리의 미래 말이다.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 독자를 상정하고 쓴 대중 교양서다. 앞에서 과학이 21세기의 인문학을 꿈꾸고 있다고 썼다. 장 교수의 '울트라 소셜'은 단순히 사실에 그치지 않고, 그 사실을 이용해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장 교수가 인용한 실험 결과 중에는, 무릎이 까져서 피가 철철 날 때와 조직 내에서 왕따를 당했을 때의 물리적 고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의 뿌리가 다르지 않다는 것. 어쩌면 현대의 진화론은 예전의 문학과 예술처럼, 인간의 감정교육까지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