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가라앉은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孟骨水道)는 물살이 거세고 빠르기로 악명이 높다. 민간 구난 업체인 '88수중'은 세월호 참사(2014년 4월 16일) 발생 한 달여 만인 2014년 5월 말 실종자 수색 작업에 투입돼 수색이 종료된 11월까지 맹골수도에서 사투(死鬪)를 벌였다. 당초 수색 작업을 이끈 언딘이 해경과의 유착 의혹으로 철수하면서 88수중이 수색 종료까지 작업을 주도했다.

세월호 침몰 44일째인 2014년 5월 29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인근 해역에서 합동구조팀 관계자들이 88수중 바지선에서 세월호 선체 절단에 필요한 수중절단기를 내리고 있다.

88수중 소속 민간 잠수사 40여명은 169일간 사고 해역에서 먹고 자며 수색을 했다. 시계(視界)가 20~30㎝에 불과한 칠흑 같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손으로 세월호 선내를 일일이 더듬어가며 실종자 7명의 시신을 뭍으로 안아 올렸다. 수색 작업이 길어지자 선체는 부식돼 내부 격실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88수중 잠수사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묵묵히 바닷속으로 향했다. 10월 29일 마지막 수습자인 295번째 희생자를 인양했다. 102일 동안 실종자가 발견되지 않아 모두가 절망하고 있던 때였다.

잠수사들의 안전 문제로 실종자 수색이 종료된 11월 11일, 사고 해역에서 철수한 88수중 잠수사들은 실종자 가족이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았다. 이들은 "나머지 실종자 9명을 찾지 못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실종자 가족들은 "궂은 날씨에 바다에 들어가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여러분을 평생 가슴에 새기겠다"고 했다.

부산으로 돌아온 88수중은 같은 해 12월 뜻밖의 어려움에 부닥쳤다. 국민안전처가 세월호 수색 작업 비용을 정산해 통보했는데 당초 88수중이 청구한 금액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88수중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세월호 3층 수습 유해 DNA 감식 결과 이영숙씨 확인]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김국현)는 88수중이 정부를 상대로 "미지급한 수색 구조비를 지급하라"고 낸 소송에서 "정부는 88수중에 25억여원을 추가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수난구호 과정에서 비용을 지출했을 경우 국가는 그 비용이 부당하게 과다하지 않은 이상 실제로 지출한 비용 상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88수중은 2020t 규모의 바지선 '현대보령호'를 하루당 1500만원씩에 임차해 수색 작업에 투입했다. 이 바지선을 129일간 사용한 88수중은 임차료로 19억여원을 부담했다. 그런데 정부는 시장에서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임차료가 하루 950만원이라며 12억여원만 줬다. 재판부는 "세월호 사고 현장에 투입돼 하루 24시간 내내 수색 작업을 수행해 일반 작업에 비해 작업 강도가 높았기 때문에 1일 1500만원이 과다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88수중은 잠수병을 예방하는 기구인 감압체임버를 다루는 체임버기사의 일당(日當)을 29만4000원으로 산정해 총 8200여만원을 부담한 반면, 정부는 이들이 현장에서 주요 임무를 담당하지 않았다며 5700여만원만 지급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업무 내용에 비춰 29만4000원이 적정하다"고 봤다.

정부는 88수중이 당초 예정된 작업 기간인 15일을 초과했다며 지연(遲延)배상금으로 총 구호 비용의 30%인 13억원을 물리기도 했다.

재판부는 "세월호 수색 작업은 빠른 조류 속도, 선내 해수의 시야 상태, 선체 내부 붕괴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일부 잠수사는 생명에 위협을 받기도 했다"며 "이들이 작업 기간 15일을 준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고, 88수중에 지연배상금을 적용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세월호 인양 업체인 상하이샐비지 역시 정부 측에 지난해 11월부터 추가 비용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당초 상하이샐비지와 916억원의 인양 계약을 맺었지만, 지난해 인양 방식을 변경하면서 329억원이 추가로 지출됐다. 이에 따라 대선 직전인 지난달 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심의가 열렸지만 결국 예산에 포함되지 않아 지급이 보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