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공장과 자동차 정비소, 금속 공장이 밀집한 서울 성수동 골목. 1일 오후 한 공장 1층에서 고온으로 가열한 검은색 폴리염화비닐(PVC) 덩어리가 압출기에서 연신 떨어져 나오고 있었다. LP(Long Playing) 레코드를 만드는 원재료에 해당하는 이 덩어리는 다진 고기를 넣어서 반죽한 '햄버거 패티(patty)'와 닮았다고 해서 음반업계에서는 '햄버거'라고 부른다.

이 '햄버거'를 곁에 있는 압축 가공기에 넣은 뒤 붕어빵처럼 찍어 누르자, 잠시 후 지름 30㎝ 안팎의 근사한 LP 레코드로 변해서 나왔다. LP는 턴테이블을 통해서 재생하는 아날로그 음반을 통칭하는 단어다. 지난 2004년 경기도 고양의 서라벌 레코드 공장이 문을 닫은 이후, 국내에서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던 LP 공장이 서울 한복판에서 부활한 것이다. 2011년 김포에서 다른 LP 공장이 문을 열었던 적이 있지만, 반품 사태와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1일 서울 성수동 LP 공장인 마장뮤직앤픽처스에서 직원들이 갓 나온 LP 음반과 LP의 소릿골을 만들 때 필요한 스탬퍼(stamper·맨 오른쪽)를 들고 있다.

이 공장의 엔지니어인 백희성 마장뮤직앤픽처스 실장은 "현재 압축 가공기 2대에서 하루 1000장까지 LP 음반을 찍어낼 수 있는 설비 규모"라며 "지금까지는 독일과 체코의 LP 공장에서 만든 음반을 5~6개월이 걸려서 수입했지만, 앞으로는 국내에서 3~4주면 LP 제작을 마칠 수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콤팩트디스크(CD), 1990년대 MP3의 등장 이후 멸종 위기에 내몰렸던 LP 음반이 되살아나고 있다. 최근 성수동에서 문을 연 LP 공장인 마장뮤직앤픽처스는 재즈 칼럼니스트 하종욱씨, 17년간 EMI·워너뮤직에서 클래식 음반 마케팅을 담당했던 박종명씨 등 음반업계 고수들이 뭉쳐서 설립했다. 이 회사는 2014년부터 2년간 300여 차례의 LP 제작 테스트를 거쳤으며, 최근 포크 가수 조동진의 6집 음반 '나무가 되어'를 발매했다.

명창 임방울과 이화중선의 판소리 선집,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번스와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 요한나 마르치(1924~1979)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음반(3장)도 출시 예정이다. 박종명 이사는 "유니버설뮤직·소니뮤직·워너뮤직 같은 글로벌 음반사는 물론, 아이돌 그룹이 속해 있는 대형 가요 기획사들과도 LP 음반 출시를 논의 중"이라며 "앞으로 아이돌 그룹의 음반도 CD와 LP로 동시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LP 부활'은 세계적인 추세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에 따르면, 세계 LP 음반 판매량은 2008년 500만장에서 2015년 3200만장으로 6배 이상 규모로 성장했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올해 음반과 턴테이블, 카트리지(레코드 음반을 듣는 '바늘') 등 LP 관련 시장 규모가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국내에서도 2016년 LP 판매량은 28만장, 매출액은 98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국내에서는 1970~1980년대 흘러간 가요 음반이나 클래식 음반에 대한 수요가 특히 높다. 음악 칼럼니스트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한 장의 LP 음반을 고른 뒤 정성스럽게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음악을 듣기까지 과정은 번거롭지만 시청각과 촉각적 경험을 통해서 음악을 듣는 재미를 극대화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모든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전락하는 디지털 세태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