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코미디 전성기를 이끈 SBS '웃찾사'가 이달 31일 종영한다. 컬투와 양세찬·이용진 등 신구(新舊) 조화로 2000년대 중반 시청률 20%를 넘나들던 지상파 대표 예능의 퇴장이다. 황현희·맹승지 등 인기 개그맨을 적극 영입해 '재도약'을 선언한 지 불과 7개월 만. 지난달 선보인 '레전드 매치'는 마지막 승부수였지만 2%대 시청률에 머물면서 실패로 끝났다. 제작진은 "시즌제(制)를 검토했으나 다음 시즌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일요 예능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KBS2'개그콘서트'도 작년부터 한 자릿수 시청률을 맴돌고 있다. 공개코미디의 추락, 이유가 뭘까.

토너먼트 방식으로‘왕중왕 코너’를 뽑는‘웃찾사—레전드 매치’는 2~3%대 저조한 시청률에 머물렀다. 사진은‘레전드 매치’에서 1위를 차지한 코너‘콩닥콩닥 민기쌤’.

◇개그맨 뺨치는 사람들, 예능판 장악

작고한 코미디언 구봉서는 "공개코미디는 관객과 연기자 사이의 진검승부"라고 한 바 있다. 칼자루 쥔 사람은 관객. 그 절대자 앞에서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연기만으로 웃겨야 하는 고충을 토로했다. 공개코미디가 TV 예능의 전부였던 시절, '웃음'은 개그맨의 몫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버라이어티 예능이 강세를 보이면서 희극인의 경계가 흐려졌다. '무한도전' '1박2일' 등 다인(多人) 체제 버라이어티쇼에서 '개그맨 뺨치는' 가수와 배우, 스포츠인이 등장했다.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 1위인 SBS '미운우리새끼'에 출연하는 농구스타 서장훈과 가수 김건모 모친 이선미씨는 시종일관 투닥거리는 매력으로 지난해 SBS연예대상 '베스트커플상'을 받았다.

◇무늬만 남은 '내부 경쟁', 창의성 실종

[SBS '수트너' 측 "지창욱 무한 아이디어에 놀라"]

공개코미디의 수명이 다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개코미디는 아이디어 회의, 대본 작업, 연습, 본 공연 등 품이 많이 드는 프로그램이다. '개그콘서트' 전성기를 이끈 서수민 PD는 2012년 한 인터뷰에서 "소속 개그맨 100여 명의 스케줄을 일일이 관리한다"며 "100명이 속한 극단(劇團)이라 '매일 출근해 개그를 다듬는다'는 원칙이 지켜질 때 흐름이 가장 좋다"고 했다. 하지만 공채 개그맨이 한 방송사에 뼈를 묻는 시대는 지났다. 한 방송사, 한 프로그램에 충성하는 제작 방식이 예능 경계가 사라지는 최근 트렌드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공채 개그맨의 처우 문제도 나온다. 한 개그맨은 "공채라도 월급이 아니라 출연료를 받기 때문에 시청률도, 가성비도 낮은 공개코미디가 예전처럼 매력적인 프로그램은 아니다"고 했다.

경쟁도 사라졌다. 전성기 때 공개코미디는 인기 개그맨과 신인 개그맨이 똑같은 취급을 받았다. 웃기면 방송을 타지만, 썰렁하면 가차 없이 편집됐다. 새 코너가 무대에 올라갈 때도 1단계 리허설, 2단계 무대, 3단계 편집 등 최소 세 단계를 거쳐야 시청자를 만났다. 한데 요즘은 이런 눈물겨운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관객은 하품을 하는데 출연진은 재미없는 코너를 들고 나와 순위 쟁투를 벌인다. 한 지상파 PD는 "내부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창의성 넘치는 코너가 화수분처럼 생산되던 것이 성공 비결이었지만 최근엔 '껍데기'만 남았다"고 말했다.

◇해법은 '대형 신인 개그맨 발굴'

'개그콘서트'는 2003년 심현섭·강성범 등 인기 개그맨 10여 명이 출연을 거부하며 다른 방송사로 이적해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당시 신인 개그맨이던 박준형·정종철 등이 활약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 때문에 공개코미디에 닥친 위기는 대형 신인을 발굴해야만 극복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석희 TV 평론가는 "공개코미디 장르는 부침(浮沈)과 재기를 반복적으로 겪었다"며 "스타 개그맨을 배출하고, 그 빈자리를 다시 대형 신인이 메우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만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