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논설고문

대통령의 최고 사명은 국가를 보위(保衛)하는 일이다. 어떤 일도 그보다 우선(優先)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0일 헌법에 따라 그렇게 국민에게 약속했다. 경제 정책이 잘못돼 나라가 그릇되는 데는 5년·10년이 걸린다. 안보 정책은 순간의 결정이 나라와 국민의 운명을 결정한다.

"1992년 1월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1962년 10월) 발발(勃發) 30주년 관련 회의가 열렸다. 위기 당시의 맥나마라 미국 국방장관·쿠바 주둔 소련군 사령관·카스트로 쿠바 총리 등등 3국의 핵심 관련자가 회의에 참석했다. 소련군 사령관은 1962년 소련군 4만3000명이 쿠바에 주둔했다고 설명했다(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케네디 대통령에게 소련 병력이 1만명 수준이라고 보고했었다). 소련 미사일에는 핵(核)탄두가 실려 있었다(CIA는 이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가장 놀라운 일은 쿠바 주둔 소련군 사령관이 만일 미국 침공(侵攻)으로 본국과의 통신이 끊어질 경우 독자 판단에 따라 미국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30년이 흐른 후 이 회의에서 처음 밝혀졌다). 이 놀라운 진술에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1960년대 초반 미국 국력(國力)은 소련의 2배 이상이었다. 미국과 쿠바와의 거리는 120km 정도다. 그런데도 세계 최강국의 세계 최대 정보기관 CIA는 미국 안보를 결정적으로 위협하는 적(敵)의 능력·동태·의도에 대해 이렇게 부정확한 정보밖에 대통령에게 제공하지 못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 상황에서 '침공'·'공습'·'봉쇄'의 3가지 대안(代案) 중 봉쇄를 선택했다. 최선(最善)의 선택이었지만 이것이 최선으로 밝혀진 것은 모든 상황이 종료된 이후였다.

한국 대통령이 안보 위기 상황에서 쿠바 위기 때의 케네디 대통령보다 정확한 정보 보좌(補佐)를 받으리라고는 가까운 시일 안에 기대하기 어렵다. 김정은의 의도와 동태 역시 오리무중(五里霧中)이기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안보의 불확실성을 줄이려면 동맹의 확실성을 높이는 방법뿐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 외교의 상수(常數)에서 변수(變數)로 변화하는 분위기다. 오바마의 미국과 트럼프의 미국은 같으면서도 다른 동맹국이다. 한국 어깨너머로 오가는 미·중 대화에선 간간이 거래와 흥정의 냄새가 풍긴다. 일본이 당사자 한국보다 미·중 간 귀엣말을 더 소상히 전해 듣는 느낌도 세계가 달라졌다는 표시다. 확실한 것은 한·미 관계에서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부분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미국의 엇박자 정권 교체 사이클이 한·미 관계에 대한 걱정을 키웠다. 올 1월 출범한 트럼프 정부는 미·북 관계의 현재를 최대 압박 단계로 설정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항모(航母) 전단을 앞세운 군사 압박, 미국 의회가 나선 고립화, UN 무대에서 진행되는 북한 규탄에 더해 북핵(北核)에 대한 중국의 태도 변화까지 끌어냈다. 농구로 치면 압박 수비로 상대를 흔드는 올 코트 프레싱 전략이다.

그런 미국의 눈에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팀이 새 의자에 앉자마자 흘리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再開) 언급이 어떻게 비칠지는 불을 보듯 하다. 당사자 국가가 대북 압박 풍선에 구멍을 내고 전선(戰線)에서 이탈(離脫)하는 행동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사드 배치도 대통령이 후보 시절 거론한 국회 동의 절차로 여전히 삐걱대고 있다. 미국은 이런 한국 내 동향(動向)에 대놓고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문재인 정부가 파견한 중국 특사는 국민이 불쾌감을 느낄 만큼 외교적 무례(無禮)를 겪었다. 사드 배치를 중단하라는 노골적 압박이었다. 중국이 사드 배치에 대한 불만을 이런 식으로 미국에 표시한 적이 없다. 중국은 과녁을 사드에 맞췄지만 한·미 관계의 벌어진 틈에 쐐기를 박아 더 크게 벌려놓겠다는 책략(策略)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선 박근혜 정부가 겪고 졸업했어야 할 사드에 공연히 손을 대 혹으로 키운 셈이 됐다.

6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가 쿵 하고 동체(胴體) 착륙하는 사태가 반드시 한가한 걱정이라고 하기 어렵다. 동체 착륙의 충격은 미국보다 한국이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논리로 미국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나라가 없다. 대미(對美) 외교 방략(方略)이 논리에서 이익 절충으로 크게 이동한 것이다. 한·미 정상 회담 준비도 서로의 국익(國益)을 조정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진보 진영은 자기들 장기(長技)가 논리라고 철석같이 믿는 터라 불안스럽다.

외교는 내정(內政)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나라 안이 제대로 돌아가야 외교에도 힘이 붙는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사정은 거꾸로다. 외교를 정돈해야 내정 개혁에 에너지를 모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첫 시험대가 대미(對美) 외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