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성 특파원

지난 5일 중국 관영 CCTV는 정규 방송을 멈추고 상하이 푸둥공항을 위성으로 연결했다. 중국이 자체 제작한 중형 여객기 C919의 첫 시험 비행 장면을 생중계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오후 2시 C919는 참관객 3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푸둥공항을 이륙해 평균 시속 300㎞로 79분간 비행한 뒤 푸둥공항으로 되돌아왔다. 최고 고도는 3000m였다. C919의 첫 시험 비행을 마친 3명의 조종사는 임무를 마치고 귀환한 우주 비행사와 같은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로부터 채 한 달도 안돼 중국은 대형 여객기 제조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C919 제조사인 중국상용항공기공사(COMAC·이하 코맥)가 23일 러시아연합항공사(UAC)와 합작으로 중·러국제상용항공기공사(CRAIC)를 상하이에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새 합작사의 목표는 대형 여객기 C929 개발이다. C929는 좌석 수가 190석 안팎인 C919보다 100석 가까이 더 많은 점보기다. 지난해 90석 규모의 중소형 여객기 ARJ21을 취항시킨 코맥이 중형 여객기 C919 시험 비행에 성공하자마자 바로 다음 단계의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해 중·러 합작이라는 도약대를 택한 것이다.

중국의 거침없는 '항공 굴기'에 세계 항공업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라는 두 거인이 철옹성을 쌓고 있는 세계 여객기 시장에서 과연 중국이 '천하삼분(天下三分)'에 성공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기술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세계 최대 규모의 중국 내수 항공 여객 시장이 지각변동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중국, 대형 여객기 개발에도 도전장

중국은 거대한 자국 항공 시장을 무기로 에어버스와 보잉 공장을 중국으로 유치해왔다. 자동차 시장에 펼친 전략을 항공기 시장에도 똑같이 적용한 것이다. 2005년 베이징에 에어버스의 기술연구센터를 유치했고, 2007년에는 중국 동북 지방의 하얼빈과 다롄에 에어버스와 합작으로 부품 공장을 설립했다. 2008년에는 중국에 판매될 에어버스 A320 기종의 최종 조립 라인을 톈진에 세워 어깨너머로 에어버스의 노하우를 배워왔다. 이 과정에서 역량을 키운 20여개 대학 및 200여개 기업으로 이뤄진 산·학·연 엘리트 그룹들이 ARJ-21과 C-919 개발을 주도했다. 지금까지 중국 내 공장이 없었던 보잉도 최근 코맥과 합작해 보잉 737를 조립하는 공장을 짓기로 했다.

지난 4일 중국 상하이에 있는 코맥(중국상용항공기공사) 상하이 R&D센터에서 중국의 자체 제작 여객기인 C919가 시험 비행을 하루 앞두고 최종 점검을 받고 있다. C919의 좌석 규모는 190석 안팎으로, 2008년 연구·개발을 시작한 이래 9년 만에 1시간20분가량의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중국은 '여객기 만들기가 우주선 만들기보다 어렵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우주 분야에서 미국·러시아에 이은 세계 3강의 위상을 갖고 있지만 독자 여객기 개발의 길은 험난한 것이다. 중국의 여객기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국영기업 코맥은 2000년 ARJ21 개발에 착수해 16년 만인 지난해 6월 이 항공기를 중국 청두항공에 인도함으로써 국내선에서 첫 자국 항공기 운항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당초 계획보다 무려 8년이나 늦은 결과였다. 코맥은 또 2008년부터 C919 개발에 나서 8년 만에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이 역시 당초 계획보다 3년 가까이 늦었다. 여객기의 경우 개발이 지연되면 상용화 시점에서 안전성과 편의성 면에서 구닥다리 여객기 취급을 받는다는 단점이 있다.

◇우주 시장보다 진입 장벽 높은 여객기 시장

중국이 만들고 있는 여객기들은 엔진 같은 주요 부품을 거의 해외 메이커들에 의존하고 있다. C919의 엔진은 미국 GE와 프랑스 사프란이 합작으로 만든 CFM 인터내셔널의 제품이고, 브레이크 시스템 등은 미국 하니웰 것이다. 중국 정부는 C919의 국산화율이 50%라고 하지만 해외에서는 중국산 부품 비율을 20% 안팎으로 보고 있다. 부품만 보면 보잉이나 에어버스와 별로 다를 게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상용화에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은 이 부품들을 하나의 완벽한 시스템으로 만들어내는 시스템 통합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많은 제조업 강국이 이 장벽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우주 항공 기술 면에서 미국에 뒤질 게 없는 러시아의 경우 수호이사가 만든 국산 여객기 '수퍼젯'이 자국 시장에서조차 보잉과 에어버스에 막혀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일본과 한국 등 제조업 강국들도 여객기 시장을 노크했지만 모두 고배를 들었다. 일본은 1960년대 여객기 개발에 나서 한때 200석 규모의 중형 여객기 개발을 계획했지만 지금은 중국의 ARJ-21에도 못 미치는 50석짜리 MRJ 제트 개발로 눈높이를 낮춰다. 보잉과 지구촌 여객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에어버스만 해도 1970년 첫 여객기를 내놓은 뒤 매출 면에서 보잉과 대등하게 되는 데 30년이 넘게 걸렸다.

◇기술은 아직 역부족…중국의 거대한 내수 시장이 최대 무기

항공 전문가들은 "중국이라면 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중국이 지닌 두 가지 조건 때문이다. 첫째 중국은 세계 최대 여객 시장을 업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국에서는 비행기를 타려는 중산층이 급속히 늘고 있다. 이에 따라 2016년부터 2035년까지 20년간 중국 항공사들이 구입해야 할 새 비행기가 6800대, 금액으로는 무려 1조달러(약 1100조원)에 이른다는 게 미국 보잉의 전망이다. 중국산 여객기를 못 미더워하는 미국과 유럽이 중국산 여객기를 안 사준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이제 첫 시험 비행에 성공한 것에 불과한 C919는 이미 받아놓은 사전 주문만 573대에 이른다. 중국국제항공과 남방·동방항공 등 중국 국적 항공사들이나 중국의 항공 리스사들이 발주한 것이다. 안정화에 절대적인 상용화 초기에 판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하나 중국 여객기 산업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후원을 업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제조업 혁신을 위한 '제조 2025' 계획에 여객기 국산화를 주요한 과제로 삼아 산업계를 독려하고 있다. C919 개발에만 90억달러를 들인 중국은 300석 규모의 C929에 이어 400석 규모의 C939로 끊임없이 도전장을 던질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전국 10곳에 국가급 항공산업단지를 만들어 이 지역들에 대해 '규제 프리'를 선언했다.

반면 중국산 여객기가 안방을 벗어나 보잉·에어버스와 진정한 글로벌 경쟁을 벌이려면 미국연방항공국(FAA) 안전 인증을 획득과 부품 국산화라는 두 관문을 거쳐야 한다. 지난해 취항한 ARJ-21는 FAA 인증을 얻지 못했다. 항공업계에서 FAA 인증은 곧 수출 허가증이나 마찬가지다. 또 "보잉이나 에어버스보다 10% 값싼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코맥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부품 국산화가 필수다. 여기까지 성공한다면 중국의 항공기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ABC 시대를 열며 본격 이륙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