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림 여론조사 전문기자

지난 5·9대선에서 세대별로 승부가 갈린 지점은 50대였다. 20~40대는 문재인 후보, 60대 이상은 홍준표 후보에게 지지가 쏠리는 가운데 50대에서 문재인 후보(37%)가 홍준표 후보(27%)와 안철수 후보(25%)에 앞서며 승기(勝機)를 잡았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던 50대 표심(票心)이 5년 만에 확 바뀐 이유는 이른바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가 50대 초·중반으로 대거 유입된 것의 영향이 크다. 민주화 투쟁이 절정일 때 대학을 다녔던 86세대는 다수가 40대였던 5년 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고 이번에도 바뀌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 더욱 눈길을 끈 것은 86세대의 위 자락인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의 선택이다. 대선 일주일 전 칸타퍼블릭 조사에서 베이비붐 세대가 주축인 50대 후반(55~59세)의 대선 후보 지지율은 문 후보 30%, 홍 후보 27%, 안 후보 23% 등이었다. 6·25전쟁 직후 태어나 격변기를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가 2000년 이후 대선에서 진보 진영 쪽에 표를 더 많이 던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서 이명박·박근혜 후보에게 쏠렸던 이들은 40대 초반이던 2002년 대선에서도 이회창 후보(45%)에 대한 지지가 노무현 후보(43%) 보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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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성향이 강했던 베이비붐 세대의 변심(變心)은 탄핵 정국뿐 아니라 끝이 안 보이는 불황에 따른 불안 심리 탓도 컸다. 작년 10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삶의 만족도가 가장 낮은 연령대는 50대였다. 은퇴 시기에 접어든 이들은 본인의 노후와 건강, 자녀의 교육과 일자리 등 다양한 형태의 불안에 시달린다. 베이비붐 세대의 변심은 복합적인 불안에서 시작됐는데 대선 과정에서 보수 진영의 정책과 공약이 그런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취업난에 짓눌린 자녀 세대와 불안감을 공통분모로 결속하며 정권 교체에 기여했다. 칸타퍼블릭 조사에서 '다음 정부가 중점을 둬야 할 정책'을 묻자 베이비붐 세대는 '경제 성장'(41%)을 다른 세대에 비해 가장 많이 꼽았다. 50대에서 보수 정당의 지지가 하락한 것은 보수의 핵심 가치인 '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지 못한 것의 영향도 컸다.

대선 결과가 자유한국당에 충격적인 것은 역대 최다인 557만951표 차 때문만은 아니다. 낡고 매력 없는 이미지로 청년층과 멀어진 자유한국당이 50대에게도 외면을 받는다면 앞으로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야당으로 바뀐 자유한국당은 언젠가 대통령 인기가 하락하면 재기(再起)의 기회가 온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반사이익으로 한몫하려 하지 말고 권력을 다시 잡으면 무엇을 할 것인지, 미래의 가치를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어떤 모습으로 새 출발을 하는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