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흠 前 외교안보연구원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한국인 지인이 있는지 물으면 누구를 말할까? 외교관으로서 일본통이었던 필자에게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그가 한국과 어떤 인연을 맺은 기억도 내겐 없다. 혹시 '겨울연가'로 일본에서 한류와 동의어가 된 '욘사마(배용준)'라고나 하지 않을까.

그가 이처럼 한국과 소원한 이유는 오래전 고향 야마구치(山口) 선배들이 한반도와 맺은 악연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조선의 국정이 문란해 동양 평화를 해친다며 정한론을 편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도자 요시다 쇼인,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피격돼 죽기 직전 조선인이 자신을 쏘았다고 듣자 "일본을 자극해 망국을 앞당길 것"이라고 했다던 이토 히로부미, 조선은 자립할 수 없다며 병합을 강행했던 가쓰라 다로 총리, 조선인은 몽매해서 눌러 다스려야 한다며 무단통치에 나섰던 데라우치 마사다케 총독이 그들이다.

가깝게는 2012년 재집권 후 전개된 한·일 관계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일본의 한 주간지는 아베 총리가 "약육강식의 시대에 강자와 약자로 공유한 역사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른 것은 당연한데 그렇다고 토라진 대통령이 정상회담까지 피했다"거나 "사드 배치에 모호하고 중국 전승기념일에 천안문에 오르는 식으로 기울더니 그럴 줄 몰랐다는 듯이 북핵 문제에 미온적이라며 돌연 중국과 각을 세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아베는 지금의 한국 정부를 구한말 조선 조정처럼 어리석다고 여겼을 수 있다. 아베 총리가 귀감으로 삼는다는 외조부이자 2차대전 전범(戰犯)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꿈은 일본을 미국 그늘에서 벗어난 강대국으로 다시 세우는 것이었다. 아베는 그에 필요한 개헌 시한을 2020년으로 못 박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까지 집권이 가능해져 자신감을 더한 아베 총리를 임기 내내 상대해야 할지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 통화를 자세히 전한 일본 언론.

아베 총리는 일본에 강경할 것으로 소문난 한국 새 정부를 어떻게 대할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나타난 현상대로 워싱턴을 우회해 접근할 수 있다. 즉 미국 요로가 일본 입장을 담은 메시지를 한국에 보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일 관계엔 제3자가 끼어들 여지가 적다. 위안부 문제만 해도 30년째 미결 상태다. 필자는 1990년대 외교 현장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그때 미진하나마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며 사죄하고 기금을 만드는 걸 보며 일단락될 줄 알았다. 그러나 한국 여론은 일본의 더 큰 책임을 원했다. 양측의 12·28 위안부 합의에도 한국 여론은 여전히 수긍하지 않고 있다.

문제가 장기화한 데는 해결에 과감하지 못했던 일본 탓이 크다. 다만 일본이 안고 있는 근본적 한계도 있다. 태평양전쟁에 승리한 미국의 점령 정책은 냉전이 시작되자 '단죄'에서 '재건'으로 바뀌어 굳어졌다. 그 뒤 '1억 국민의 집단적 죄'라는 논리로 책임을 회피한 침략 주체가 계속 나라를 이끌게 됐다. 이로 인해 일제의 반인도적 범죄가 일본 국내법에서 빠지고 원폭에 의한 민간 희생이 부각되며 가해 의식보다 피해 의식이 커졌다. 이런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릴 수 없다면 한국은 위안부 문제를 일본이 오래도록 지고 갈 역사의 채무로 남길 수밖에 없다.

지난 역사는 고치지 못해도 새 역사를 쓰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려면 한·일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자산을 살려 공동의 이익을 키워야 한다. 동북아에서 상대적 약자인 한국은 혼자 힘만으로 안전과 풍요를 얻고 지키기 어렵다. 강자들의 경합을 우리의 기회로 살려야 하고 그러려면 한국의 존재가 그들에게 두루 소중해져야 한다. 하지만 과거가 현재와 다투는 지금의 한·일 관계가 지속되는 한 이는 불가능하다. 원칙의 문제에 단호한 것과 현실을 직시하며 실익을 좇는 것은 양자택일이 아닌, 함께 추구할 목표다. 동북아 정세의 격동도 그런 선택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