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꼭 걸어두겠습니다."

지난 8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개막식에서 전시품 '나보니두스 왕의 석비' 탁본(拓本)을 선물 받은 술탄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관광국가유산위원회 위원장(문화재청장 겸 관광공사사장)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현 사우디 국왕의 장남인 그는 "한국 도자기가 최고인 건 알았는데 이런 기술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사우디 왕자의 감탄을 자아낸 탁본을 만든 사람은 김종우(44·사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그는 전시 개막 전 이틀 만에 사우디아라비아 유물 10여 점을 종이 위에 먹으로 옮겼다. 탁본은 대상품의 표면 무늬와 글, 조각 등을 확인하기 위해 표면에 종이를 붙이고 먹을 치는 기법. 선물한 액자 속 탁본에는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던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로니아 나보니두스왕에 대한 쐐기문자 기록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나머지 탁본은 전시장 곳곳에 함께 전시했다.

탁본은 한·중·일 3국에서 주로 쓰는 기법. 사우디에 탁본이라는 동아시아 기록 전통이 있다는 걸 알리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작업이었다. 서구에서는 흔치 않은 기법이라 사우디 관계자도 신선하다는 반응이었다. 완성된 탁본을 본 사우디 박물관 관계자는 "다른 석비도 탁본을 떠주면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요청했다.

술탄 빈 살만(오른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지난 8일 ‘나보니두스 왕의 석비’ 탁본을 이영훈(왼쪽)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부터 선물 받고 포즈를 취했다.

김 학예사는 중앙대 공예과에서 목공과 금속공예를 전공했다. '탁본 전문가'가 되는 데 이 손재주가 도움이 됐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존처리 학예사로 일하며 2005년부터 탁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성덕왕릉 십이지 원숭이상'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 같은 3차원 입체 석상도 탁본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2015년 처음으로 입체 탁본에 성공한 성덕왕릉 십이지 원숭이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단다. "석상 네 면에 각각 한지를 발라 탁본을 뜨고 실물처럼 재조립했는데 2~3주가 걸렸어요. 될 것 같기는 했는데 반신반의하며 해봤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전시품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정말 기뻤어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김 학예사와 인연을 맺었던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이번 전시 탁본을 그에게 맡겼다. 술탄 왕자는 "'아라비아의 길' 전시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을 포함해 지금까지 11번째인데 그중 한국이 최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