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

문재인 대통령 책상에는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제목의 387쪽짜리 대선 공약집이 놓여 있다. 공약 200여 건에 5년간 178조원이 드는 장기 플랜이다. 노년층을 겨냥한 기초연금·노인 일자리 수당 증액부터 청년들을 위한 구직 촉진수당, 어린이가 있는 2030세대에게 줄 아동수당 등 즐비하다. 아마도 서둘러 시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 당시 공개한 이 필요 예산이 제대로 계산되고 재정 대책은 마련됐는지 의문이다.

60대 후반 이모씨 부부는 기초연금을 매월 32만원에서 내년에는 40만원, 2021년부터는 48만원으로 지금보다 16만원을 더 받게 된다. 풀 뽑기 같은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면 월 22만원 받던 것을 40만원으로 적어도 월 18만원을 더 받는다. 집에서 키우는 손주의 가정 양육수당 월 20만원에다, 내년부터는 아동수당으로 월 10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돈을 버는 큰아들(연봉 6500만원)이 월급에서 내는 세금은 월 35만원이다. 이씨 가족의 경우, 매월 35만원 세금 내고 정부로부터 그보다 2배 넘는 118만원을 받게 된 셈이다.

공약집에 이처럼 돈 받을 대상은 정해놓았지만, 돈(세금) 거둘 대상은 명확하지 않다. 방산비리 예산, 최순실 예산 등 권력·비리 예산을 근절하고, 일부 사업 예산을 삭감해 필요 재정의 3분의 2를 마련하고, 탈루 세금을 찾아내고 고소득자 과세를 강화해 나머지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걸로 해결될지 의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도 '증세 없는 복지'를 내걸고 공약 135조원 이행에 드는 재정 방안을 내놓았지만, 취임하면서 공약을 재조정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초연금으로, 모든 노인이 아니라 70%에게만 주기로 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기초연금 공약을 지키지 않은 대통령으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65세 이상이 매년 20만명씩 늘어나는 상황에서 미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의료비 경감 공약은 더 큰 문제다. 간병비, 특진비, 상급병실료 등에 건강보험 혜택을 주겠다고 했다. 치매 의료비 90%를 건보에 적용하고, 아동 입원비도 줄여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 드는 돈 대부분은 공약 예산에 포함되지 않았다. 건보 재정에서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건보료를 인상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공약 이행만 능사가 아니다. 시급한 현안 사업도 많다. 한 해 태어나는 아기 수가 40만명이던 것이 올해는 30만명대로 뚝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인구 쇼크를 아동수당과 육아휴직수당 인상 같은 장기적 저출산 대책 공약으론 절대 해결할 수 없다. 둘째 낳는 부모에게 거액의 축하 일시금을 줘서라도 분위기를 바꾸는 노력이 더 급하다.

복지제도는 선거를 통해 확대되고 발전한다. 새 정부는 공약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무리한 공약은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규모를 줄여야 한다. 과욕을 부리면 후임 정권은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복지는 한번 시작하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복지를 확대한 정권이 아니라 그리스처럼 포퓰리즘 정권이란 오명만 역사에 기록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