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의 꼴레뇨는 우리나라 족발과 모양과 맛이 닮아 여행객들 사이에서 큰 인기였다. 이처럼 여행지 또는 음식점에서 어디서 먹어 본 듯, 익숙한 맛과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낯선 음식과 마주할 때가 있다. 정동현 셰프가 기고한 '생각하는 식탁'에서 어떤 면에서는 익숙하지만, 알고보면 생소한 외국음식 7가지와 레시피를 소개한다.

호주 레스토랑에서 골백번도 넘게 들은 노래가 있다. 메탈밴드 AC/DC의 ‘백 인 블랙(Back in Black)’이다. 이 노래가 주방에 울려 퍼지면 내 팔뚝에 산맥 같은 힘줄이 돋아났다. 주방에도 노동요는 필요하다. 멸치를 털며 노래를 부르는 기장 앞바다 어부처럼 나도 고래고래 이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선곡 죽이네.” 빡빡 민 대머리 셰프 닉이 인사를 건넸다. 닉은 웃으면서 그날의 특선 요리 부야베스에 쓸 생선 육수를 체에 거르기 위해 국자를 위아래로 휘저었다.

(왼)부야베스 수프 (오)서울 삼청동 '아 미디'의 부야베스.

부야베스는 세계 3대 수프 중 하나로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유의 대표적인 요리로 유명하다. 이 음식은 어부들이 팔다 남은 잡고기로 끓여 먹던 생선 매운탕쯤 된다. 지중해에서 놀던 볼락(rockfish)과 아귀(monkfish), 갯장어, 노랑촉수(red mullet) 등을 쓰는데 인물은 따지지 않는다. 잘생기든 못생기든 상관없다. 사실 못생긴 놈이 더 맛있다.

부야베스의 필수 동반자인 바삭한 마늘빵을 한 번은 사프란을 넣은 프로방스식 마요네즈 루유(rouille)에 찍어 먹고, 또 한 번은 걸쭉한 부야베스 국물에 찍어 먹으면, 아주 그냥 끝내준다. 보슬보슬한 감자는 육수를 온몸 가득히 빨아들였으며, 붉은 토마토와 황금빛 사프란이 만나 빚어낸 육수의 빛깔은 남국의 햇살 같다. 거기다 마늘, 양파, 올리브유의 불끈대는 힘이 가세했다. 부야베스의 명성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만했다.

부야베스에 넣는 잡고기를 하나하나 보면 '이런 걸 어따 쓸꼬' 한숨이 절로 나오는 행색이다. 그러나 한데 모아 놓으면 귀족처럼 멋지게 생긴 생선을 능가하는 맛을 낸다. 그 맛은 매끈하고 정제된 것은 아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의 뼈와 몸을 부글부글 끓여 얻은, 거칠지만 본질적이고 깊은맛이다. 하나만 놓고 보면 보잘것없지만 모아 놓으면 멋진 그놈들, 외인구단 같기도 한 그 조합의 맛은 참 각별하다.

그 숭고한 맛을 좀 거창하게 비유하면 이렇다. 부야베스는 엄격하게 꽉 짜인 바흐의 평균율이라기보단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의 놀랍도록 흥겨운 카덴차다. 서늘하고 치밀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쿨재즈라기보단 뜨겁고 즉흥적인 스탄 게츠의 보사노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징지지징 울어대는 로큰롤이다. 어깨가 들썩이고 '캬' 소리가 나는.

"캬." 목구멍 뒤쪽에서 거칠게 울리는 익숙한 파열음은 내가 살던 부산에서 자주 듣던 것이다.

영도 바닷가의 한 횟집, 양은 냄비에 얄팍하게 썬 무, 결이 투박한 손두부를 숭덩숭덩 넣고는, 파와 마늘 듬뿍,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로만 자작하게 끓이고, 거기에 후춧가루 팍팍 소금 솔솔, 박하 내음, 숲 내음에 뒤로는 톡 쏘는 초피가루까지 뿌리면 '영도식' 매운탕이다.

별것 없지만, 대단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모아놓으면 훌륭한 모양새에 감탄하는 맛. 하루하루 서로 의지하며 못난 것끼리 부둥켜안고 살아가며 작은 기적을 만드는 우리를 닮은 그 모습이, 부야베스가 주는 기쁨이요 위안일지도 모른다. ▷기사 더보기

"남들이 사줄 때는 쇠고기지"라고 할 때도 나는 늘 "고기는 삼겹살이지"라고 했다.

"소는 일도 하지만 돼지는 오로지 고기를 목적으로 기르잖아. 그만큼 맛있는 거야"라며 논리적(?) 근거를 대기도 했다. 고소하고 밀도 있는 그 맛을 뉘라서 부정하겠는가. 지하철 요금이 1만원이고, 작은 방 월세가 100만원인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를 아는지 친구들은 "고기는 먹고 사냐?"며 걱정을 해주었다. 그때마다 난 이렇게 답했다. "여긴 삼겹살이 제일 싸."

우리나라에서는 탕수육이나 해먹는 그 안심 값이 삼겹살의 두 배였다. 삼겹살이 왜 이렇게 싸지? 바보 같은 그 의문은 금세 사라졌다. 사람들이 잘 안 먹기 때문에 싼 것이었다. 이유는? 기름이 많아서다. 프랑스니 벨기에니 하는 나라의 삼겹살이 싼 값에 국내로 수입되는 것은 나라마다 선호하는 부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삼겹살은 알고 보면 미덕이 참 많은 고기다. 웬만해서는 조리할 때 망치기가 쉽지 않다. 생선처럼 섬세하게 다루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 덜 익었으면 더 익히면 그만이다. 기름이 많아 쉬 건조해지지도 않는다. 육즙이 잘 날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삼결살 콩피.

그중 우리에겐 낯설지만 인기 만점인 조리법이 있다. 놀랍게도 삼겹살을 기름에 '삶는' 콩피(confit)다. 이름은 귀엽지만 말만 들어도 속이 매슥거린다.

콩피는 거위, 오리를 많이 키웠던 프랑스 남서부에서 남아도는 기름으로 뭘 할까 궁리하다 나온 음식이다. 소금에 절이다시피 한 고기를 기름에 재워놓으면 냉장고 없이도 몇 달간은 상하지 않게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냉장고가 생기고 통조림이 나오면서 콩피는 보관법이 아닌 조리법이 되었다. 기름을 먹은 고기가 그만큼 맛이 좋기 때문이다.

내게 삼겹살 콩피 맛을 알려준 사람은 런던의 저 유명한 셰프 고든 램지의 레스토랑 '페트뤼스(Petrus)'의 헤드 셰프 숀이었다. 요리 경력 8년 만에 세계적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가 된 자다. 그 숀이 청춘을 바친 페트뤼스의 대표 메뉴 중 하나가 바로 삼겹살 콩피다. 고기에 따라 콩피를 조리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름에 삶는 기본 원리는 같다.

완성된 콩피는 물에 삶고 불에 구운 것과는 질감 자체가 아예 다르다. 삼겹살이 이리도 부드러울 수 있을까 의심할 정도의 식감이다. 육즙은 주르륵, 여기에 사과 소스(사과와 양파를 버터에 익히고 갈아서 크림을 섞어 만든다)를 곁들이면 말을 잃게 된다. 삼겹살을 기름에 삶았는데, 느끼하지 않냐고? 삼겹살이 안 느끼할 수는 없다. 살찌지 않냐고? 삼겹살 먹으면서 그런 걱정하는 건 온당치 않다. 맛있다. 정말 맛있다.

처음 삼겹살 콩피를 먹고 느꼈던 환희와 충격은 여전하다. 내가 몰랐던 세계, 전통과 열정과 집착이 만든 맛의 환희였다. ▷기사 더보기

"그러니까 감자떡이란 거잖아?"

"뇨키라고, 뇨키!"

뇨키로 말하자면 으깬 감자와 밀가루, 거기에 달걀이나 치즈, 기름을 넣고 반죽해 엄지손가락 크기로 잘라 삶아내는 파스타다.

내게 뇨키의 맛을 알려준 건 셰프 제이크였다. 호주의 여름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곧 가을이 되자 레스토랑은 비수기로 접어들어 손님도, 셰프들 할 일도 푹 줄었다. 제이크는 돌파구라도 찾으려는지 가을에 메밀 뇨키로 만든 스페셜 메뉴를 내기로 했다.

으깬 감자와 밀가루, 거기에 달걀이나 치즈, 기름을 넣고 반죽해 엄지손가락 크기로 잘라 삶아내는 파스타, 뇨키.

정통 뇨키는 이탈리아 밀가루인 세몰리나(semolina)로 만드는데 우리는 대신 동양식 메밀가루를 썼다. 메밀 뇨키에 곁들여 가을 채소와 버섯, 브뤼셀 수프라우트(brussel sprouts·방울양배추, 미니양배추), 에다마메(edamame) 콩, 뵈르 누아제트(beurre noisette·갈색으로 끓인 버터), 닭 육수까지 들어가는, 요컨대 만들기 복잡하고 스페셜한 메뉴였다.

제이크가 만든 뇨키는 맛있었다. 트뤼프 오일과 파르메산 치즈의 쿠리쿠리하고 고소한 향은 진했고, 감자는 솜이불처럼 포근하고 가벼웠다. 어딘지 모르게 향이 비슷한 트뤼프 오일과 메밀이 만나 동양적인 맛이 났는데 호주 손님들에게는 이국적인, 나에게는 친숙한 맛이었다.

뇨키는 만들기 쉽다. 그러나 제대로 만들긴 어렵다. 사람 마음도 뇨키 같아서, 다 안다고 생각했을 때도 다 안 것이 아니다. 요리를 배우는 것, 사람을 알아가는 것, 그 둘은 묘하게 비슷하다. 사람과 가까워지다가도 상처받듯, 뇨키의 그 폭신한 감촉을 만들어내기 위해 때로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뇨키, 참 별것 아닌데. ▷기사 더보기

"영국 요리라 하면 피시 앤드 칩스 라든가…"라 하고는 얼른 다른 음식을 떠올리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생선튀김만 먹고 살 수 있단 말인가.

당연히 생선튀김 말고도 다른 음식도 먹는다. 다른 건 '감자튀김'이 아니냐고 또 묻는다면, 감자튀김은 영국 사람에겐 '쌀'과 같은 것이기에 논외로 해야 한다고 답하겠다. 그럼 뭘 먹을까. 커리를 먹는다. 그리고 아주 좋아한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길 것이다. 영국에 웬 커리?

영국의 커리 역사는 300년이 약간 못 된다.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인도에 세력을 뻗던 1700년대 후반, 인도 향신료를 스튜에 넣어 먹은 것이 시작이다. 영국에 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영국에는 인도 사람이 정말 많다.

사람이 있으면 자연히 음식이 따라오는 법, 영국에서 인도 음식점은 한국의 중국집 같은 위상을 가진다. 한국에는 기껏해야 '순한맛·중간맛·매운맛' '카레'밖에 없지만 커리는 어떤 음식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커리는 '찌개'처럼 음식의 큰 부류다.

종류로는 마른 커리(dry curry)부터 우리가 흔히 먹는 걸쭉한 커리(wet curry)까지, 나라로는 인도에서 파키스탄, 타이, 말레이시아까지, 인도 및 아열대 향신료와 야채를 배합해 만든 요리는 모두 커리라고 부를 수 있다.

영국식 커리에는 기(ghee)라고 부르는 인도식 맑은 버터(clarified butter) 대신 보통 버터를, 코코넛 밀크 대신 동물성 크림을 쓰기 때문이다. 버터 치킨(Butter Chicken)같이 영국에서만 볼 수 있는 커리도 많다. 오히려 인도 현지에서 영국식 커리를 팔기도 한다.

존에게서 배운 요리 중 하나가 바로 커리다. 그리고 같이 일하던 인도 셰프, 우리 둘은 존한테 커리 만드는 법을 배웠다. 마치 한국 사람이 일본 사람에게 김치를 배우는 것 같다고나 할까? 존이 잘생긴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말했다.

"영국인이 인도인에게 커리 만드는 법을 알려주겠어."

커리에 따라 만드는 방법과 향신료의 배합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 얼개는 같다. 이렇게 만든 커리는 한국에서 먹는 카레와 완전히 다르다. 정체불명의 노란 가루로 만든 카레는 어딘지 모르게 힘이 빠져 머리 잘린 삼손 같이 애처롭고, 스물 갓 넘은 대학생들이 엠티 가서도 만들 만큼 만만하다. 그런 카레 생각은 그만! 볶고 갈고 또 볶고 졸여서 만든 커리는 완전히 다르다.

그 향기가 코브라 춤추듯 요염하고 맛은 뭐랄까, 햇빛과 달궈진 공기와 그리고 붉은 흙과 그 사람들의 체취까지, 모든 것이 녹아들어 있는 씨앗들과 뿌리와 잎, 열매의 진액이 한군데 모여 있는 것 같다. 뜨겁고 흥겹다. 앙칼지고 옴팡진 맛, 절대 내성적이지 않다. 중력을 거부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향처럼 모든 것을 고양하는 힘이다. '이러니 영국이나 인도나 사족을 못 쓰지'란 생각이 절로 도는 맛이다.  ▷기사 더보기

"아일랜드 하면 떠오르는 게 뭐야?"
미셸의 질문에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뭐긴 뭐겠어, 기네스 맥주지!"

호주 멜버른에서 미셸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아일랜드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고작 기네스 맥주밖에 없었다. 줄넘기 오래 하기, 키스 오래 하기 등등 쓸데없는 것으로 세계 제일을 가리는 기네스북 기록을 주관하는 그 기네스 말이다.

기네스 맥주는 아일랜드 흑맥주(stout)인데 라거(lager)나 에일(ale)과 달리 발아되지 않은 맥아를 태우듯이 볶아 만든다. 그래서 씁쓸하면서도 구수하다. 기네스가 여타 흑맥주와 다른 점은 역시 크림같이 진한 거품에서 나오는 맛이다. 탄산 대신 입자가 더 고운 질소를 주입한 덕분이다.

영국에 있을 때는 기네스 맥주를 열심히 마셨다. 기네스 파인트(pint·약 568㎖) 한 잔에 6000원 정도였다. 그 값이면 마실수록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묵직하고 부드러우며 씁쓸하지만 향기로운 뒷맛, 빨려 들어갈 듯 깊은 검정의 보디(body), 단호하게 단정한 선을 그으며 하얗게 떠 있는 거품. 맛있고 아름다운 맥주가 바로 기네스다.

(왼)아일랜드 대표 음식인 '기네스 파이' (오)아일랜드 흑맥주 '기네스 맥주'.

이러한 기네스는 아일랜드에서 기네스파이를 만들 때에도 사용된다. 파이에 웬 술? 파이 하면 프렌치 파이, 초코파이 아냐? 반문하는 사람 있을 거다. 기네스 파이는 페이스트리 과자다. 어쨌든 파이와는 거리가 멀다. 기네스 파이에 기네스 맥주는 파이에 들어갈 소를 만들 때 사용된다. 그럼 파이 소에 기네스 맥주를 넣는 건가? 초콜릿에 술 넣듯이? 그건 아니다. 소에 넣는 쇠고기를 익힐 때 넣는다.

파이는 버터와 밀가루로 만든 반죽, 페이스트리(pastry)로 그릇을 덮거나 겉을 만들고 그 속에 고기나 과일 등을 넣어 오븐에 구운 것을 말한다. 종류는 엄청 다양하다.
쇠고기 민스를 익혀 그릇에 넣은 뒤, 매시포테이토를 그 위에 지붕처럼 덮어 오븐에 굽는 영국의 셰퍼드 파이(sheperd's pie), 우유에 생선과 해산물을 삶아 용기에 넣고 위에 역시 매시포테이토를 올려 구운 피시 파이(fish pie), 양고기나 쇠고기, 감자, 돼지고기와 사과를 넣고 페이스트리를 빵처럼 감싼 고기 파이(meat pie) 그리고 아일랜드에는 기네스 파이가 있다.

기네스 맥주를 넣는 것은 요리할 때 청주를 넣어 잡내를 제거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색과 맛은 다르지만. 국화 향이 나는 청주와 달리 기네스에서는 초콜릿, 나무, 흑설탕 향이 난다. 청주가 맛을 산뜻하게 한다면 기네스 맥주는 맛을 진하고 무겁게 만든다. 청주는 하늘로 향하지만 기네스 맥주는 땅으로 가라앉는다. 끓일수록 향과 색은 진해져 묵직한 흔적을 남긴다.

요리가 완성되면 과감하게 숟가락을 파이에 찔러 넣어 입으로 가져간다. 쇠고기는 결대로 찢어지며 사르르 녹고, 기네스 맥주처럼 어두컴컴한 국물에서 풍기는 감칠맛과 풍부한 향이 입안 가득 찬다. 갈색으로 바삭바삭하게 구워진 페이스트리까지 그 국물에 적셔 먹으면 알게 된다. 서양 사람들이 왜 파이에 환장하는지. ▷기사 더보기

"진짜 과카몰레를 만들 거야."

"과카몰레?"

"과카몰레 몰라? 나초 찍어 먹는 아보카도 디핑 소스! 나초는 알지? 옥수수 과자."

과카몰레를 되묻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동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덴은 그 와중에 아보카도 디핑 소스(dipping sauce)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아보카도 원산인 남미에서 오래전부터 만들어진 음식인 과카몰레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식이다. 나초를 찍어 먹어도 좋고 샐러드처럼 과카몰레만 퍼먹어도 된다. 구운 닭고기와도 궁합이 잘 맞는다.

(왼)Olive '오늘 뭐먹지'에서 소개되었던 '과카몰레' (오)디핑소스처럼 찍어 먹거나 발라먹는 멕시칸 요리 '과카몰레'.

미국에서는 미식축구 결승이 열리는 수퍼볼(Superbowl) 기간에 판매량이 급증한다고 할 정도로 대중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과카몰레를 그전까지는 몰랐다. 나는 동료들의 시선이 참기 힘들었다. 뭔가 모르는 것이 나올 때마다 그들이 비웃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앞에서는 아는 척하고 몰래 화장실에 들어가 휴대폰으로 조리법을 검색해본 적도 많았다. 그러나 이때 나는 나의 무지를 숨기지 못했다. 덴은 어이없다는 표정도, 그럴 줄 알았다는 비웃음도 짓지 않았다. 대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배우고 싶어? 그럼 내가 가르쳐 줄게. 진짜 과카몰레 만드는 법을."

일단 버튼 하나만 누르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 공이를 들고 내리찧어야 했다. 그 원초적인 움직임은 주술적이었다. 그리고 음악을 듣는 듯했다. 익숙한 주방의 노래였다. 칼로 도마를 두드리고 절구를 찧는, 가슴을 울리는 태초의 소리가 들려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옛날 잉카 제국의 소리 같기도 했다. 그는 전투에서 이긴 장수처럼 의기양양하게 과카몰레를 내 앞에 내밀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과카몰레 맛을 봤다. 첫맛은 고소했다. 지방 함량이 15%에 육박하는 아보카도 덕분이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그 맛을 아린 양파와 신 라임즙이 상쇄했다. 토마토는 단맛, 고추는 매운맛으로 포인트를 주니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이제 알겠지? 과카몰레는 이렇게 만드는 거야." 덴은 큰 입을 찢으며 웃었다. 사실 믹서를 써도 돌절구에 빻은 것과 비슷한 맛이 난다. 문제는 질감이다. 과카몰레는 아보카도 덩어리가 느껴져야 한다. 죽처럼 부드러운 게 아니라 입에서 씹히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믹서를 쓰면 그 질감을 만들기가 까다롭다.

씹히게 만든다 하더라도 입자 크기가 균일하게 나온다. 그러면 재미가 없다. 얼기설기 꿰맨 것처럼 일정하지 않은 입자 크기가 과카몰레의 재미요 맛이다. 그래야 고소하고 기름지며 맵고 시큼한 이 화려한 음식의 맛이 산다. 통제하고 재단하면 시들어버리는 젊음처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놀듯이 만들어야 맛이 나는 음식이다.  ▷기사 더보기

베네치아는 비극의 도시였다. 예정된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에서 옛 그리스 비극과 맥락이 같았다. '바포레토(vaporetto)'라고 하는 수상 버스를 타고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에 내리자마자 '해리스 바(Harry's Bar)'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베네치아에서 오직 레스토랑 단 한 곳을 가야 한다면 나는 여기에 갔을 것이다. 이곳이 가장 맛있어서도 아니다. 흔히 말하는 가성비가 좋아서도 아니다. 바로 이곳에서 현대 이탈리아 요리에서 중요한 음식 중 하나인 카르파치오(carpaccio)와 칵테일 벨리니(bellini)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왼)생선회로 만든 '카르파치오' (오)우리나라 육회와 비슷한 소고기 '카르파치오'.

유래를 따지면 카르파치오는 1950년 해리스 바의 창업자 주세페 치프리아니(Giuseppe Cipriani)가 날음식이 좋다는 처방을 받은 단골을 위해 붉은색과 흰색을 즐겨 쓴 베네치아 화가 비토리오 카르파치오에게서 영감을 얻어 만든 음식이며, 벨리니 역시 치프리아니가 15세기 베네치아의 화가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에게서 영감을 받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마르게리타 피자 한 판에서도 이탈리아 국기를 읽는 이탈리아 민족이기에 이 이야기가 온전히 사실인지는 조금 의심이 갔다. 그러나 해리스 바가 여전히 영업 중이고 카르파치오와 벨리니의 시초가 된 장소임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카르파치오는 무엇이고 벨리니는 또 무엇인가? 우선 카르파치오와 비슷한 한국 음식을 꼽는다면 육회 정도가 된다. 소고기나 참치 등 날재료를 얇게 펴서 전채로 내놓는 음식 형태를 아울러 카르파치오라고 한다. 벨리니는 이탈리아 샴페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발포성 와인 '프로세코(prosecco)'에 복숭아 과즙을 넣어 만든 칵테일이다.

머스터드를 섞어 만든 마요네즈를 뿌린 베네치아 ‘해리스 바’의 카르파치오.

다른 레스토랑에서는 참치로 카르파치오를 만들었다. 역시 참치의 겉을 굽고 식힌 뒤 랩으로 동그랗게 모양을 냈다. 주문이 들어오면 동남아풍 샐러드와 곁들여 냈는데 주요리 전에 먹는 전채로 인기가 좋았다. 그 모든 음식의 시작이 바로 베네치아 해리스 바다.

해리스 바의 '원조 카르파치오' 맛은 밋밋했다. 겉을 굽지 않으니 날고기를 그대로 먹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머스터드를 섞어서 만든 마요네즈를 찍으니 맛이 더 나았다. 포크 몇 번에 한 접시는 금방이었다. 프로세코에 복숭아 과즙을 탄 벨리니는 아마 거꾸로 만들어도 맛이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강남 인근에서는 훨씬 맛이 없는 칵테일을 더 비싼 값에 팔기도 한다는 사실이 떠올라 한 잔을 여러 번 나눠 아껴 마셨다.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