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결선투표를 이틀 앞둔 지난 5일 오후(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화학회관'에서 열린 '투표 기권을 반대하는 포럼'. 극우 국민전선(FN) 후보인 마린 르펜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 동참한 프랑스 정계 거물들과 언론계·문화계 저명인사 40여명이 속속 모여들었다. 2007년 사회당 대선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 환경에너지부 장관과 마뉘엘 발스(사회당) 전 총리, 장피에르 라파랭(공화당) 전 총리 등이 보였다. 참석자들은 "조국이 극우의 득세라는 전후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지금은 극우 세력 집권을 막는 데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다. 포럼 개최자인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마크롱이 르펜을 이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주 큰 격차로 이겨야 한다"고도 했다.

투표 마친 마크롱과 '인증샷' - 7일(현지 시각) 프랑스 대선에 출마한 중도 신생 정당‘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후보가 북부 도시 르투케에서 투표를 마치고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프랑스 사회는 결선투표를 앞두고 극우의 집권을 막고자 선거 막판 빠르게 결집했다. 지난달 23일 1차 투표 당시에는 각자 후보를 내고 대립했던 좌·우파도 힘을 합쳤다. 은행원인 티보(30)씨는 "1차 투표 때 극좌 후보인 멜랑숑을 찍었지만 결선에선 마크롱을 찍을 것"이라며 "르펜이 득세하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키트리 다리(29)씨는 "내 주변엔 나처럼 르펜 지지를 막으려고 마크롱을 찍겠다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했다.

이날 오전 파리 바스티유광장에선 고등학생 500여명이 "르펜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바질(16)은 "투표권은 없지만 우리도 파시스트에 반대한다는 뜻을 보여주려 나왔다"고 했다.

여론 조사 결과는 이런 프랑스 사회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줬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 조사에서 1차 투표 때 극좌 정당 연대 '프랑스 앵수미즈'의 장뤼크 멜랑숑을 지지했던 사람 중에 마크롱 지지로 돌아섰다는 의견은 지난 1일 48%에서 5일 55%로 급등했다. 중도 우파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을 지지했던 유권자 중에서도 마크롱을 뽑겠다는 의견이 6%포인트가 올랐다. 일간 리베라시옹은 "좌우 진영이 극우 집권을 막기 위해 결집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 당선 마크롱은 누구?]

국민전선의 르펜은 지방과 중소 도시를 중심으로 여전히 강력한 지지세를 유지했지만 전체 프랑스 민심을 반(反)극우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지는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반(反)난민, 반EU, 보호주의를 내세우는 국민전선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장마리 르펜이 결선에 진출한 데 이어 이번 대선에서 그 딸인 르펜 후보가 또다시 결선에 진출했다. 르펜 후보는 지난달 27일 1차 투표에서 극우 정당 역사상 최고 득표를 갈아치우기도 했다. 하지만 르펜은 판세 역전을 노렸던 마지막 TV 토론에서 지나친 네거티브 전략으로 일관해 오히려 유권자들의 마음을 잃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간 르피가로는 "르펜은 자신이 왜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오로지 마크롱 흠집 내기에 몰두했다"고 했다.

친(親)EU와 자유주의, 개방주의를 지향하는 마크롱이 집권에 성공하면 의원이 1명도 없는 신생 정당의 후보가 프랑스의 60년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는 '신(新)프랑스혁명'의 주역으로 우뚝 서게 된다. 그러나 기존 정당 기반이 없는 마크롱이 정국을 이끌어 나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전망도 적잖다. 다음 달 실시하는 총선에서 마크롱의 '앙마르슈'가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공화당 등 기존 주류 정당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마크롱은 이날 "총리 후보를 이미 점찍어 놨다"며 "현 프랑수아 올랑드 정권이 퇴진하는 오는 14일쯤 국민에게 공개하겠다"고 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프랑스는 곧바로 6월 실시되는 총선 정국으로 돌입할 것"이라며 "만약 앙마르슈가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마크롱은 반쪽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