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경제부 차장

우리 경제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아질 거라고 한다. 올 초엔 1%대 저성장 국가로 추락할 것이란 비관론도 나왔는데, 지금은 3% 가까운 성장이 기대된다고 한다. 10년 가까이 돈을 풀어온 미국과 유럽의 경기가 나아지면서 작년 하반기부터 세계 무역이 늘어난 덕분이다. 3년 만에 무역 1조달러 고지를 탈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주가도 치솟는다. 아직 소비가 살아나진 않았지만, 우리 경제에 돌파구가 마련된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나라는 탄핵 정국이란 혼란기를 넘어 새 정부를 맞이할 변곡점에 서 있다. 그런 시점에서 성장 엔진인 수출이 살아난다는 것은 대단한 호재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세계가 수퍼 호황을 누릴 때 '나 홀로 저성장'에 빠진 경험이 있다. 노무현 정부 5년(2003~2007) 동안 시장경제에 역(逆)주행한 결과, 세계경제 평균 성장률을 단 한 번도 넘지 못했다. 양도소득세 강화, 종합부동산세 신설 등 세금 폭탄은 집값 안정엔 실패하고 오히려 소비심리를 악화시켜 민간 소비를 위축(8.9%→5.1%)시킨 요인이 됐다. 성장보다 복지를 앞세워 복지 예산을 77% 늘렸지만 '양극화 해소'는커녕 소득 분배는 악화됐고, 성장률은 7%대에서 4~5%로 뒷걸음질했다. 민간이 뛰어다닐 시장에 정부가 플레이어로 나섰다가 벌어진 일들이다.

정부는 멍석만 깔아주면 된다. 운동장이 기울지 않도록 다져주고, 반칙하면 엄벌하는 심판 역할만 하면 끝이다. 최순실 사태도 따지고 보면 정부가 문화 융성을 주도하겠다고 나섰다가 빚어졌다. 삼성을 포함한 대기업들은 심판인 정부가 선수로 나타나 휘젓고 다니자 그 주먹을 피하려고 수백억원을 내놓은 것이다. 최근엔 미래 먹거리로 불리는 4차 산업혁명도 정부가 판을 짜려는 조짐이 보인다. 돈이 벌리면 지옥이라도 찾아가는 게 기업이다. 그런 기업들에 알아서 4차 산업혁명을 디자인해보라고 하면 된다. 정부는 걸림돌이 되는 장벽을 허물어주면 그만이다.

정부가 할 일은 선수로 뛰기 어려운 취약 계층을 보듬는 것이다. 저소득 약자들을 도우려면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조세부담률(국내총생산 대비 세금 비율)이 18.5%로 스웨덴·덴마크 등의 절반인데, 국내총생산의 10%에 불과한 복지 지출을 북유럽 국가처럼 30%대로 급격히 끌어올릴 수는 없다. 대기업이니까, 부자니까 더 뺏어야 한다는 논리는 실효성은 없고 거부감만 줄 뿐이다. 세금 많이 낼 선수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조세부담률을 2021년까지 21.5%까지 높여 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유승민 대선 후보의 제안이 현실적이다. 국민 이해를 구해 사회복지세를 마련하자는 심상정 후보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새 대통령에겐 기회와 도전이 공존한다. 세계경제 성장세에 올라타 불황에서 탈출할 절호의 기회와, 누가 되든 국회 의석이 절반을 넘지 못해 야당 협조 없이는 어떤 정책도 펼치기 어려운 도전에 직면한다. 우리 경제를 되살리려면 민간이 주인공 되고 정부는 스태프에 머물러야 한다. 좋은 정책이라면 상대방 아이디어도 갖다 쓸 수 있어야 한다. 핵발전소 지지자였지만 여론을 받아들여 원전 폐기를 선언한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민의(民意)를 존중하는 리더가 우리에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