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의원 14명이 1일 밤 국회 의원회관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를 만나 사실상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2일 오전 모임을 가진 뒤 입장을 공식적으로 결정하고 '탈당 후 한국당 복당(復黨)'을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을 탈당해 지난 1월 '새로운 보수'의 깃발을 걸고 창당했던 바른정당이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사실상 와해 국면으로 들어간 것이다. 14명 전원이 탈당할 경우 바른정당은 의석 수가 18석으로 줄면서 국회 원내교섭단체 자격도 잃게 된다.

홍준표(맨 왼쪽)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1일 밤 국회 의원회관에서 바른정당 소속 의원 14명과 회동하고 있다. 이날 회동에 참석한 바른정당 의원은 김재경, 권성동, 김성태, 김학용, 박성중, 박순자, 여상규, 이군현, 이진복, 장제원, 정운천, 홍문표, 홍일표, 황영철 의원(가나다순) 등이다. 자유한국당에서는 홍 후보를 포함해 이철우, 강효상, 민경욱 의원 등이 참석했다.

바른정당 김재경 의원 등 14명은 이날 밤 9시 50분쯤 국회 의원회관에서 홍 후보와 전격 회동했다. 이날 회동에는 김 의원을 비롯해 권성동·김성태·김학용·박성중·박순자·여상규·이군현·이진복·장제원·정운천·홍문표·홍일표·황영철 의원(가나다순)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대선이 7일 남은 시점에서 좌파 패권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홍 후보를 중심으로 보수 대통합을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양측 관계자들은 "홍 후보는 '여러분이 도와줘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지지를 요청했고, 바른정당 의원들은 '보수 혁신을 약속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사실상 양측이 통합의 명분을 주고받은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홍 후보는 이날 회동 뒤 "이 분들이 이루고자 했던 보수 대혁신을 같이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1일 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만난 바른정당 의원 14명은 2일 오전 7시 30분 다시 모여 최종 의견을 조율한 뒤 탈당을 결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정당 관계자는 "14명 외에 추가로 의원 1명이 탈당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고, 두어 명은 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앞서 바른정당의 김무성·정병국·주호영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날 저녁 유승민 대선 후보를 만나 홍 후보와의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제안했으나, 유 후보는 이를 거듭 거부했다.

유승민, 페북에“끝까지 간다”글 올려 -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1일 밤 페이스북에 올린‘끝까지 간다’는 내용의 자필 입장문.

[기호4 유승민 "단일화 할 생각 없다"]

바른정당 의원 14명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1일 밤 만남은 바른정당 의원들이 홍 후보에게 유 후보와의 단일화를 제안하는 형식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단일화를 거부해온 유 후보를 압박하고, 탈당의 명분을 쌓는 측면도 있었다.

그동안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행(行)파 ▲국민의당행파 ▲유승민 지지 잔류파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날 홍준표 후보와의 면담을 주도한 사람들은 한국당행에 무게를 뒀거나 홍 후보 지지를 주장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는 김성태·김학용·박성중 등 이른바 김무성 의원의 측근 그룹도 상당수 포함됐다. 크게 봐서 김무성계와 유승민계로 구성된 바른정당에서 한 축이 사실상 무너진 것이다. 바른정당 관계자는 "김무성 의원은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어 함께 행동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 의원들은 홍 후보를 만난 후 탈당을 기정사실화했다. 박성중 의원은 이날 모임 후 기자들과 만나 "유승민 후보가 본인이 앞서는 홍·유 양자 여론조사에 의한 단일화도 받지 못하겠다고 하니 이젠 우리도 어쩔 수가 없다"고 했고, 홍문표 의원은 "이미 탈당 선언문까지 다 써놨다"고 했다. 김재경 의원은 "탈당과 지지 선언 둘을 놓고 의논했는데, 탈당 쪽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주호영 공동선대위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모임에 참석한 14명 중 12명 이상은 나갈 것 같다"고 했다. 이들과 홍 후보의 만남에 배석했던 한국당 이철우 총괄선대본부장은 "14명 전원이 2일 탈당하고 복당 절차를 밟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들이 모두 한국당으로 돌아갈 경우 바른정당 내 국민의당행파도 고민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한 3선 의원은 "차라리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지지해서 중도보수연합을 이루는 편이 혹시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명분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 추세이고, 안 후보 측에서 여전히 '단일화'가 아닌 '자연 사퇴'를 원하는 상황에서 실익이 없다는 얘기가 많아 기세가 꺾이긴 했다. 어떤 쪽이든 바른정당은 정당의 형태로 단일 대오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 된 셈이다.

변수는 유 후보다. 유 후보가 이들의 탈당 전에 후보 사퇴나 단일화 수용 등의 뜻을 밝힐 경우 일부 의원들은 탈당에서 빠질 여지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 유 후보는 이날 오후 서울 잠실 유세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당으로 돌아왔다. 그 뒤 김무성·주호영·정병국 공동선대위원장과 만나 후보 단일화 문제를 논의했다. 공동선대위원장들은 이날 유 후보에게 전 국민 여론조사 방식으로 홍 후보와 단일화를 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 후보는 끝내 단일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유 후보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필 입장문을 올리고 "보수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며 "어렵고 힘들고 외롭지만, 나 유승민은 끝까지 간다"고 했다. 유 후보를 중심으로 당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의원들은 10여명 정도다. 이들은 "새누리당을 탈당할 때의 초심을 지켜야 우리의 정치적 미래도 보장된다"고 하고 있다. 한 유승민계 의원은 "이번에 당을 나가는 사람들이 진짜 배신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