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맥매스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폭스뉴스 인터뷰로 1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비용 논란이 다시 불거진 데는 '참모의 딜레마'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비롯된 동맹국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하면서도 자신이 모시는 대통령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 말이 오해를 키우게 된 것이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이날 '한국 측에 사드 기존 합의를 지킬 것이라고 얘기했냐'는 질문에 "어떤 재협상(renegotiate)이 있을 때까지는 기존 합의가 유효하며 우리가 했던 말을 지킬 것"이라는 모호한 답변을 했다. '재협상을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말은 아니었지만, 전날 청와대 발표에는 없던 '재협상'이란 단어가 포함된 것이 문제였다.

사드 비용만 재협상은 사실상 불가능

지난 24일 백악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대사들과 대화하는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美 '사드 재협상' 운 띄우며 트럼프 발언 봉합]

윤병세 외교장관은 이날 출입기자단과 만나 "(맥매스터 발언의) 방점은 양국 간 이뤄진 (기존의 사드) 합의를 지킨다는 것에 있다"고 했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도 "비용 분담 문제는 한·미 간에 이미 합의가 된 사안이고 또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규정에도 명시돼 있다"며 "재협상을 할 사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확신을 하고 말하는 배경에는 '사드 비용만 갖고 재협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미국이 굳이 '사드 비용 청구'를 고집하려 한다면 '부지·기반시설은 한국이 제공하고 그 외의 모든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SOFA 제5조부터 개정해야 한다. 정부 당국자는 "SOFA 개정 협상은 비용 분담뿐 아니라 주한미군의 지위, 범죄 처리 절차, 주한미군 기지의 무상 사용이나 환경 문제 등 온갖 이슈가 튀어나올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라며 "SOFA 개정은 오히려 미 측에서 꺼리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1995년 시작된 2차 SOFA 개정 협상은 2001년까지 만 5년 이상을 끌었다.

한·미 동맹이 유지되는 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상황과 기존 합의를 무시하고 계속 '사드 비용을 내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 국방부 당국자는 "계속 미국이 사드 비용을 요구한다면 차기 정부는 '사드를 도로 가져가라'고 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이는 사실상 동맹의 파국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미 모두 이런 상황까지 가려 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우면서도 ▲한·미 동맹은 파탄 내지 않는 방안을 찾기 위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인상 등 '우회로'를 택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GDP 대비 국방비 인상은 트럼프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가들에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요구다. 정부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대비를 하고 있다. 윤 장관은 이날 "큰 틀에서 (미 측이) 안보 분야에서 동맹국이나 우방국들이 좀 더 많은 기여를 해주길 바라는 큰 흐름이 있다"고 했다.

백악관 인맥 구축이 숙제

사드 비용을 둘러싸고 한·미 간에 불필요한 혼선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정상외교의 공백'에서 찾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 궐위 상황에서 우리 외교·안보 당국은 '공식 채널'을 통해서 최대한 미국과 소통하려 노력해 왔지만, 정상들이 직접 뛴 중국·일본 등과 비교해 우리 측 이해관계를 설득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얘기다. 또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기존 관료 조직을 활용하기보다 딸·사위 등 개인적 인맥을 통해 업무를 처리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이런 한계는 더욱 두드러졌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대선 후 차기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백악관 인맥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일본은 딸 이방카, 중국은 사위 쿠슈너를 잡았더니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 시진핑 국가주석의 관계가 눈에 띄게 부드러워지지 않았냐"며 "대미 투자 기업을 통해 백악관에 접근하는 방안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다만 미국 내에도 이방카나 쿠슈너의 영향력을 곱게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나중에 뒤탈이 날 가능성도 있다"며 "부친이 한국전 참전용사인 펜스 부통령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