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행은 언제나 가시밭길이었다. 한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권을 얻은 2002 한·일 월드컵을 제외하곤 늘 어렵게 아시아 예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이번 대표팀처럼 내부에서 계속 파열음이 나온 적은 없었다. 부실한 경기력으로 팬들의 질타를 받고, 감독·선수 간 분열 양상을 보인 데 이어 '차두리 쇼크'가 한국 대표팀을 덮쳤다.

대표팀 전력분석관을 맡았던 차두리(37)가 돌연 사퇴했다. 대한축구협회는 28일 차두리 전력분석관이 사의를 표해 이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27일 전력분석관으로 대표팀에 합류한 지 6개월 만이다. 차두리는 '현재 받고 있는 지도자 교육과정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을 협회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차두리의 교육과정은 5월 중순에 끝나며, 한국 대표팀 경기는 6월이 돼야 다시 시작된다. 이 때문에 사퇴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감독과 선수 양측의 가교 역할을 하던 차두리(오른쪽) 전력분석관이 사퇴했다. 가운데는 슈틸리케 감독. 맨 왼쪽은 주장 기성용.

대표팀에서 차두리의 역할은 소통 창구였다. 그를 전력분석관에 선임할 당시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대표팀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차두리는 선수들의 형님 역할뿐만 아니라 대표팀·감독·선수와 언론의 소통 창구 역할도 맡을 수 있다"고 했다. 이때는 이란전(10월 11일) 이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카타르의 소리아 같은 공격수가 대표팀에 없다"며 선수 탓을 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팀 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르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차두리가 들어온 뒤에도 대표팀은 흔들렸다. 지난 3월 23일 중국 원정에서 충격의 0대1 패배를 당한 뒤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은 "이렇게 해선 월드컵 나갈 수 없다. 앞으로는 선수들뿐 아니라 코칭스태프 모두 변화해야 한다"는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이후 차두리가 대표팀 내부 불협화음에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꼈다는 해석이 있다.

실제 차두리는 지난 3월 28일 최종예선 시리아전 졸전(한국 1대0 승리) 이후 사퇴 뜻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시리아전 후 지도자 교육을 위해 독일로 떠났으며, 현지에서 이메일을 통해 슈틸리케 감독과 이용수 위원장에게 사퇴 의사를 밝혔다. 슈틸리케 감독이 4월 초 독일에서 지도자 자격증 교육과정을 밟고 있는 차두리를 직접 찾아가 설득했지만, 그의 의사를 되돌리지 못했다. 축구계 한 인사는 "슈틸리케 감독과 차두리 사이에 눈에 띄는 마찰은 없었지만, 찰떡궁합은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다"며 "슈틸리케 감독이 차두리의 훈련 방식에 대해 지적을 하는 일이 몇 차례 있었고, 차두리는 '내 능력이 부족하구나' 하고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차두리는 협회를 통해 "대표팀에 도움이 되고자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했다"며 "신뢰를 보내준 슈틸리케 감독님과 코치진, 그리고 후배 선수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협회는 후임 분석관을 뽑을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선수단의 '형님 역할'을 맡았던 차두리가 빠진 채 월드컵 9회 연속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4승 1무 2패(승점 13)를 기록, A조에서 이란(승점 17)에 이어 2위에 자리하고 있다. 조 2위까지 주어지는 러시아행 티켓을 놓고 우즈베키스탄(승점 12), 시리아(승점 8)가 추격 중이다. 한국은 카타르(6월 13일), 이란(8월 31일), 우즈베키스탄(9월 5일)과의 경기를 남기고 있다. 카타르전과 우즈베키스탄전은 원정으로 치러야 한다. 축구계 한 인사는 "단합해도 모자랄 판에 대표팀은 적전 분열 양상"이라며 "감독 교체 실기가 지금의 사태를 불러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